경제와 관련된 법과 제도는 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기업 자율 경영을 이중삼중 옭아매는 규제가 적잖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은 ‘더 센 상법’이라 불리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개정안은 기업이 자사주를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 자사주에 6개월 유예기간을 줬다지만 자사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길이 차단된다. 이재명정부는 이미 8월22일 제2차 상법 개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규모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2차 상법 개정안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내년 9월 시행된다. 하지만 시행되고 나면 파장이 적잖을 것이다. 많은 기업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릴 게 우려된다. 특히 소액주주는 물론 사모펀드·헤지펀드 등과 법정 싸움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경영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실정에서 기업이 자사주를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는 3차 상법 개정을 하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우를 범할 수 있다. 상장사들은 주가 방어나 유동성 확보, 경영권 방어 등의 이유로 자사주를 사들여 왔다. 현재 상장사의 70% 이상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고 그 가치가 70조 원을 웃돈다. 자사주는 인수합병(M&A) 등 미래 성장 재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소각 의무화는 기업 경영권을 흔들고 장기 성장동력도 훼손할 소지가 다분하다. 해외에서 자사주 소각을 법제화한 사례도 드물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자사주를 10% 이상 보유한 104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2.5%가 소각 의무화에 반대했다. 이들은 사업 재편 등 경영 전략에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고, 경영권 방어 능력이 약화한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자사주 보유·매각은 기업이 적대적 M&A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패로 활용됐다. 2003년 소버린의 SK 공격이나, 2015년 엘리엇의 삼성 공격에서 자사주가 경영권을 지키는 핵심 역할을 했잖은가.
여당은 기업주의 경영권 방어도 뒷받침해야 한다. 경영권 방어 제도가 취약한 국내 규제 환경 때문에 기업들이 분쟁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국에 있는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황금주 등이 허용되지 않다 보니, 국내 기업들엔 자사주 매입만이 사실상 경영권을 방어할 유일한 수단이다.
그간 재계에선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의결권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차등의결권은 주당 부여되는 의결권 수가 다른 주식을 말한다. 경영자 등이 보유한 특정 주식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거나(복수의결권), 반대로 특정 주주에겐 의결권을 부여하지 않을(무의결권) 수 있다.
국내에선 현행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돼 인정되지 않는다. 의결권이 남용될 위험이 있지만 적은 지분으로도 확실하게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힌다. 비슷한 개념으로 황금주도 있다. 단 한 주만으로도 주주총회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적대적 M&A 시도를 단번에 무산시킬 수 있다.
특정 주주 지분만을 희석할 수 있는 포이즌 필도 외국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 제도가 있으면 기존 지배주주는 시가보다 싸게 주식을 사 외부 세력의 인수 시도 자체를 저지할 수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이라면 미국과 일본·프랑스 등이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을 모두 도입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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