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77] 애써 공부시킨 게 다 헛수고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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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평가라는 칼날에 목이 잘리고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24 06:30:10

달봉이 자랑스럽게 장원 소식을 내게 문자로 알려 왔다. 무대에 달봉이 탁종 대신 메고 나간 건 물론 기타였다. 방송 출연 이후 예쁜 여학생들이 교회에 많이 온다고, 연말 결산 대회에 다시 출연한 달봉이 넉살 좋게 말했다. 일요일 늦은 아침, 서울의 자취방에서 혼자 찬밥을 물에 말아 떠먹다가 텔레비전에 나온 달봉의 모습을 본 그날부터 나는 내가 떠나온 집을 이따금 눈앞에 그려 보곤 했다. 아버지와 그분의 새로운 아내, 그리고 내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달봉.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가족의 완전한 풍경이었다. 그것이 나를 못 견디게 외롭게 했다.

“강 목사님 아들 아냐?”

“그래. 무훤이네, 무훤 군이야.”

“자주 좀 내려오지. 어찌 그리 한 번을 안 왔어?”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던 날,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꼭 한 번, 고향 마을에 내려갔을 때였다. 조용히 모신다고는 해도 아버지의 오랜 지인들이 배웅하러 나왔다가 나를 알아보고 책망했다. 그들은 내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또는 들으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저마다 수군거렸다.

“어렸을 때 그렇게 책을 읽더니 소설가가 됐대.”

“소설? 그걸로 밥이나 먹나?”

“아니에요, 기관사라던데.”

“기차?”

“아니. 지하철.”

“목사님이 그렇게 힘들여 공부시킨 게 다 헛수고였구먼.”

“대신 젊은 목사님이 든든하게 계시잖아요.”

“사람은 열두 번도 변한다고, 저리 점잖고 듬직하게 공부 잘하는 목사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큰 목사님이 싹을 보고 거두신 거네.”

사람들은 오래전 나와 달봉에 대한 평가를 자신들끼리 되짚어 꺼내고 뒤집고 정돈해서 깔끔히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소설 안 써?”

운전하면서 달봉이 물었을 때 나는 얼굴이 화끈 붉어졌다. 진심으로 내 소설을 기대하고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달봉의 어머니도, 아내도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소설가였다고, 소설을 쓴 적 있다고 사람들에게 소개한 적 없었다. 아내에게조차 소설을 썼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내는 그날 이후에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소설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첫 장편 ‘겨울의 무덤’이 나오고 문단 술자리에서였다.

“그걸 소설이라고!”

당시 중견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경수가 테이블 위에 잔을 탁, 내려놓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좌중의 눈과 귀가 그에게로 쏠렸다. 그해 문학 전문지 겨울 호에 내 작품의 평론을 써 달라고 청탁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으스대듯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