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소통문화아카데미 이사장(성균관대학교 전 유학·동양학부 교수) ⓒ스카이데일리
노자는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것은 내리고 낮은 것은 올리며, 남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메우니,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메우나, 사람들의 도는 그와는 달리 부족한 데에서 덜어 남는 데를 받든다’며 탄식한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겸애교리’(兼愛交利)를 주장하는 묵자는 ‘남는 힘이 있어도 서로 수고해주지 않고, 남아 썩어가는 재물이 있어도 서로 나눌 줄을 모르며, 훌륭한 진리가 있어도 서로 가르쳐주지 않으니, 천하의 어지러움이 금수와 같다’며 이성이 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탄식한다.
둘은 모두, 함께 혹은 함께 나눔의 ‘작은 크기’를 말하고 있다.
공자는 ‘극기복례’를 말한다. 나는 바깥세상에서 남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내 안에서 나 자신과 미리 싸워 자신을 이겨(克己) 예로 돌아간다(復禮)는 것이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을 때, 나는 남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남들도 하게 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이 있으면 남들에게 하게 하지 말라고도 말한다.
맹자는 인군이 자기 ‘혼자’만 생각한다면, 그는 영원히 홀로되어 더 이상 ‘홀로의 자리’, 일인자로서의 지위에 설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자신의 ‘사회적 혹은 사회에 의해 생성된 유능’을, 그의 ‘타자들’, 그의 ‘사회적 무능들’과 나누면서 그들과 함께하는 삶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락(獨樂)을 비판하는 맹자의 동락(同樂) 개념은, 결국 하나의 ‘수직주의적 함께’ 내지는 ‘무거리적 거리’의 한계를 부분적으로만 넘어설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도 함께 보여준다.
순자는 군주의 배를 지지하여 띄워주는 것도 강물이지만, 군주의 배를 뒤엎는 것도 강물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리가 높아도, 재산이 많아도 군림, 전횡(專橫), 독재, 독단(獨斷)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서라면, 서로가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서로 원하는 것을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세 사람도 모두 함께 혹은 함께 나눔의 모습 내지 크기를 말한다.
나누며 함께하는 삶에서 찾아지는 예(禮)의 크기는, 일단은, 남, 다름 혹은 약자에 대한 배려의 크기요, 남, 다름, 약자와 소통할 수 있는 크기라 할 것이다. 과거 신분제의 예 역시 남 배려지만, 그 때의 남은 위일 때가 많아, 배려의 배(配)는 배제의 배(排)로 쉽게 바뀔 수 있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수평적으로 같이 하는 삶이 큰 가치로 생각될 수 없었다. 과거 신분제의 예담론과 실천은 윗사람 중심으로 말해지고 들어지며, 세상크기로부터 고립된 개인의 내면에 갇혀 있었다.
수직에 의해 오염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여림도 같이 있는 예 자체에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외적 크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음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만남과 소통의 법인 ‘미래의 예’, ‘열린 예’, ‘수평 예’는, 그러나, 아래와 약자의 배려 내지 다름의 배려 문제를 배려하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태도이다. 이는 원활한 소통의 전제이자 동시에 결과라 할 것이며, 나아가 사람크기와 세상크기를 함께 생각하는 방법이라할 것이다.
열린 예, 수평 예는 ‘균형 잡힌’ 권력관계나 이해관계를 생각하면서, 함께 사람다울 수 있는 ‘수평적 함께’를 지향하는 만남과 소통의 자세라 할 것이다. 소통 열음과 인성 열음이 함께 이야기되는 대목이다.
과시는 ‘나를 올려 보이는(示)’ 태도이고, 무시는 ‘남을 내려 보는(視)’ 태도다. 이에 비하여, ‘나를 내려 보이고 남을 올려 보는’ 다름 배려의 예는, 다름과의 만남, 다름과의 소통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람으로 함께 살기’로 향한다.
불통이나 폭력과 함께하는 배제 내지 배척의 배(排)는 밀어-내기지만, 소통 내지 예와 함께하는 배려의 배(配)는 끌어-들이기다. 배제의 배는 떼어내기지만, 배려의 배는 만나기, 짝하기, 함께하기이다.
이러한 ‘밀어내고 떼어내는’ 배(排)와 ‘끌어-들이고 짝하는’ 배(配) 사이에서, ‘소통 열음 속 인성 열음’, ‘인성 열음 속 소통 열음’의 ‘이통치통’(以通治通)이 이야기된다. ‘이통치통’은 말 그대로 소통으로 소통을 다스리고 되돌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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