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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3천3백70만 계정 개인정보 유출과 경기 광주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소식은 이 기업의 속도 지상주의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11월 26일 새벽, 경기도 광주시 문형동 쿠팡 경기광주 5물류센터에서 새벽 근무를 하던 50대 계약직 노동자 A씨가 작업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앞선 21일에도 경기 화성 동탄 쿠팡 물류센터에서 30대 노동자가 근무중 사망했다. 쿠팡 물류센터 야간 노동자의 사망은 올해만 네 번째다.
불과 며칠 뒤인 11월 29일, 쿠팡은 이용자 3천3백70만 명의 이름,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일부 주문정보가 무단으로 유출된 사실을 밝혔다. 애초 “4천5백여 계정 의심”이라던 설명은 열흘 만에 사실상 고객 대다수의 정보가 털린 초대형 사고로 번복됐다.
쿠팡은 이번 유출에 대해 “해외 서버를 통한 비인가 접근” “결제 정보와 로그인 정보는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침해 시점이 올해 6월 24일로 추정될 만큼 장기간에 걸쳐 무단 접근이 이뤄졌고, 회사가 이를 인지해 신고한 것은 11월 18일이다. 5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고객 정보는 완전히 방치됐다는 의미다.
지난해 11월 배달원과 고객정보 15만건 유출 관련 과징금 16억원 처분을 받은 지 1년 만이다. 21년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도 여전히 보안에는 관심이 없었고 역대급 유출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 2011년 네이트-사이월드 3500만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후 최대 규모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디지털 영역에서 벌어진 보안 사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쿠팡은 이미 노동 현장에서 수차례 죽음과 마주해 왔다. 2020년 10월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노동을 하던 20대 청년 고 장덕준 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이듬해인 2021년 6월에는 이천 덕평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던 소방관 김동식 구조대장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화재 당시 내부 구조와 스프링클러 작동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안전 투자보다 비용 절감에 기울어진 대형 물류센터 운영 방식이 지적됐다.
쿠팡의 배송망을 뒷받침하는 퀵플렉스 기사들의 현실 역시 다르지 않다. 이들은 쿠팡로지스틱스 서비스와 특수고용 형태로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있다. 쿠팡 로고가 찍힌 차량을 타고 쿠팡 앱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만, 법적으로 쿠팡 직원은 아니라는 구조다. 덕분에 과로와 질병 끝에 사망해도 책임의 1차선은 개인과 가족에게 향한다. 노조와 시민단체 조사에서 퀵플렉스 기사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0시간을 넘고, 실질 휴식시간이 20분 남짓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올해 5월 고 정슬기 씨 사례는 이 시스템의 압박이 어떻게 생명을 옥죌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벽 배송을 위해 하루 10시간 안팎, 주 6일 노동을 이어가던 그는 배송 수행률과 불량률에 따라 배정구역을 회수하는 이른바 ‘클렌징’ 제도에 시달렸다. 배송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다음 주 일감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 구조에서, 쉬는 시간은 생계와 직결되는 두려움 앞에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 과로가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은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아니다. 둘 모두 투자해야 할 영역에 돈을 아끼고, 속도를 앞세운 경영 판단이 낳은 결과라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보안 시스템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대신 사고 이후 과징금과 이미지 관리 비용으로 대응하는 방식, 노동자의 안전과 인력 구조 개선에 나서기보다 특수고용과 외주화를 통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 겹쳐질수록 위험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이익은 회사에 집중된다.
쿠팡 내부의 인식 전환 없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보안 조직은 더 이상 비용으로만 볼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 역시 인력 운용의 부수적 고려가 아니라 경영의 핵심 지표가 돼야 한다. 이용자에게는 “결제 정보는 안전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지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고객 중심’이라는 구호는 공허한 수사가 될 뿐이다.
현관 앞에 놓인 로켓배송 상자에는 누군가의 장시간 노동과 건강, 그리고 안전이 함께 실려 있다. 국민의 정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기업이 그 국민의 생명과 노동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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