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발 가계부채가 내수 소비를 구조적으로 옥죄는 '만성 질환'이 됐다. 빚을 내서 집을 사면 자산 효과로 소비가 늘어난다는 통념과 달리, 과도한 원리금 상환 부담과 자산 쏠림 현상으로 소비 여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찬우 과장 등 한국은행 조사국 구조분석팀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부동산발(發) 가계부채 누증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013년 이후 과도하게 누적된 가계부채가 우리나라 민간소비를 매년 연평균 0.4%p 이상 둔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8%p 상승해 중국,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통상 부채가 늘면 유동성이 공급돼 소비가 늘어나는 '유량 효과'가 발생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같은 기간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이 1.3%p 뒷걸음질 쳤다.
부채가 유동성을 공급해 소비를 늘리는 효과보다 갚아야 할 돈이 많아져 지갑을 닫게 만드는 '구조적 소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팀 분석한 결과, 가계부채 누증은 2013년부터 민간소비를 연평균 0.40~0.44%가량 끌어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사실적 분석' 결과, 만약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전인 2012년 수준으로 관리되었다면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민간소비 수준은 지금보다 약 4.9%(미시 분석)~5.4%(거시 분석) 더 높았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우리 경제의 소비 활력이 떨어지는 주요 원인이 인구 고령화뿐만 아니라 '빚'에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분석결과 우리나라 소비 성장률의 구조적 둔화폭(1.6%p) 중 인구구조 변화가 0.8%p, 가계부채 누증이 0.4%p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가계부채가 소비를 짓누르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원리금 상환 부담 급증 ▲낮 부의 효과 ▲비생산적 자산 거래로의 자금 쏠림이다.
우선 빚 갚느라 쓸 돈이 없다. 한국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최근 10년간 1.6%p 상승해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늘었다. 특히 DSR 상승분의 대부분(+5.4%p)은 금리가 아닌 대출 원금(Q) 증가에 기인했다.
또한 집값이 올라도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한국의 주택가격 상승 시 소비 탄력성은 0.02%에 불과해 주요국(0.03~0.23%)보다 현저히 낮았다. 집값이 오르면 이를 담보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주거지로 옮기거나 자녀 주거 마련을 위해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매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값이 하락한 비수도권에서는 역자산 효과로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대출금의 종착지도 문제다. 가계부채 증가분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실물 소비가 아닌 기존 주택 구매나 전세 갭투자 등 자산 거래에 잠기며 '돈맥경화'를 유발했다. 상가나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대출 역시 공실 증가로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차주의 현금 흐름을 악화시켰다.
한은은 현재의 가계부채 상황을 '급성 질환'보다는 '만성 질환'에 비유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등으로 인해 당장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은 작지만, 과도한 빚이 경제의 혈관을 좁혀 소비 활력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동맥경화와 같다는 진단이다.
김 과장은 "가계부채가 소비를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며 "최근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긍정적이나, 소비 여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일관된 가계부채 축소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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