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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험 제도는 모든 운전자가 가입하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이다.
그런데 내년부터 시행될 자동차보험 시행령 개정안은 이 안전망의 성격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상해 12~14급을 받은 경상환자에 치료비를 보험회사가 대신 지불해 주는 기간을 원칙적으로 ‘8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치료가 필요하다면 환자 측이 소명을 해야 한다. 과잉진료와 부정수급을 막아 보험료 인상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의료계 등에서는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얼마 전 기자는 이 쟁점을 다룬 세미나를 취재했다. 현장에서는 보험업계와 의료계·소비자 단체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섰다.
손해보험협회는 매년 교통사고로 170만 명이 다치고, 보험회사가 지급하는 치료비만 2조 원을 넘어선다고 설명했다. 그중 경미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일에 이르는 치료가 청구되는 사례를 제시하며 “잘못된 보험금 지급으로 결국 모든 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보험의 본질이 다수가 소수를 돕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일부 과잉진료가 전체 가입자에게 부담으로 돌아오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의료계와 소비자 측 발언자들은 일률적 제한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반박했다. 환자의 몸 상태는 개인차가 크고, 사고 후 회복 속도 역시 천차만별인데 기계적으로 8주라는 선을 긋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방의료계는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간 치료비 산출 방식의 차이를 들어 “마치 한방 치료비가 과도하게 책정된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환자들이 선택한 치료가 단순히 비용 수치로만 평가되고 있다는 불만도 컸다. 여기에 한 소비자 단체는 “상위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으로 치료비 지원 기간을 정하는 건 절차가 잘못됐고, 소비자 권리를 줄이는 개정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듣다 보니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나 여러 통계와 제도의 취지를 살펴본 끝에 보험회사의 8주 제한 방침에 찬성하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됐다. 그 이유는 경상환자의 치료비 증가 속도가 중상환자보다 훨씬 더 가파르기 때문이다. 세미나에서도 골절이나 신경손상 등에 해당하는 중상환자(상해 1~11급)에게 지급된 향후치료비는 2600억 원으로 5년 사이 7% 감소한 반면, 염좌나 삠 등의 경상환자(상해 12~14급)가 받은 향후치료비는 1조41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약 8% 증가했음을 지적했다.
보험은 결국 상호부조다. 사고를 당하지 않은 대다수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일부 피해자가 치료와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일부의 무리한 청구로 인해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가 인상된다면 제도는 지속 가능성을 잃게 된다.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해 온 국민의 신뢰 역시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선을 마련해 균형을 잡는 작업은 불가피하다.
물론 개정안이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치료 연장 필요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면 또 다른 분쟁을 낳을 수 있고, 보험사가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환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보험업계는 명확한 기준 마련과 공정한 절차 보완에 힘써야 한다. 환자의 건강권을 존중하면서도 보험료 누수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미나장을 나서며 이번 개정이 단순한 비용 절감책이 아니라 제도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길 바랐다. 보험회사의 경상환자 치료비 8주 제한은 그 첫 단추다. 피해자에게는 정당한 치료와 보상이 보장되고, 모든 가입자에게는 보험료 부담이 공정하게 돌아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자동차보험이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이자 국민과 맺은 사회적 약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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