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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이면 습관이 된다.”
자기계발 열풍의 출발점이 된 이 말은 사실 한 성형외과 의사의 관찰에서 비롯됐다. 미국 의사 맥스웰 몰츠는 1960년대 환자들의 얼굴을 고쳐주면서 그들이 새로운 모습에 적응하는 데 평균 21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외과 수술대 위에서 탄생한 이 작은 통찰이 훗날 전 세계가 인용하는 ‘습관의 법칙’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에서 21일이 아니라 21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습관이 있다. 바로 건설 현장의 죽음이다.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매년 건설 현장은 여전히 가장 많은 노동자를 삼킨다. 2023년 기준 재해 사망자 4명 중 1명(24.1%)이 건설업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대형 건설사 중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장은 마이동풍이다. 왜일까. 건설사들이 쥐고 있는 ‘법적 기술’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사고를 내고도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어김없이 영업정지 효력정지 가처분과 취소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번번이 인용했고 사건은 본안으로 넘어가며 몇 년씩 표류했다. 그 사이 현장은 공사를 멈추지 않았고 기업은 수익을 거뒀다.
정부는 강력한 제재를 말하지만 그 또한 반복된 습관처럼 공허하다. 입찰자격 영구 박탈을 외쳐도 법의 빈틈은 메워지지 않고 행정처분은 경고성 카드로만 남는다. 대통령의 호통은 국민에게 잠시 분노의 카타르시스를 줄 뿐이다.
14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2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장관은 “중대 재해 반복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마련 중”이라 다짐했지만 기업인들은 제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되레 안전교육·제도 지원을 요청했다.
어떤 CEO는 외국인·고령 인력이 많은 현장 특성을 언급하며 안전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또 다른 CEO는 대통령의 발언을 직원들과 함께 시청하며 안전 소통망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폰·흡연 같은 위험 행동을 금지해 위반 시 퇴출하는 규정을 마련했다는 회사도 있었다. 심지어 근로자가 몸이 불편할 때 작업 열외권을 보장하고 임금을 일부 지급하겠다는 사례까지 나왔다.
언뜻 보면 기업들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가려진 진실이 있다. 현장에서 가장 큰 위험은 여전히 ‘안전보다 속도’를 중시하는 구조,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에서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계약, 인력·장비 축소다. 대기업 CEO들이 간담회에서 내놓은 대책은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보다는 도덕적 면죄부를 쌓는 데 그쳤다.
정부의 우유부단함이 거슬린다. 건설 현장의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정부는 여론을 의식한 경고를 던지다가 건설사의 반발과 소송전에 밀려 뒷걸음치곤 했다. 강력한 제재와 현장 지원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며 허송세월만 한 셈이다.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타인을 보며 자신을 규정한다. 건설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이 소송으로 처벌을 피해 가면 다른 기업도 똑같은 길을 택한다. 그렇게 처벌 회피가 습관이 되고 현장 사망사고는 일상으로 굳어진다.
우리 건설 현장의 죽음은 수십 년을 넘어 굳어진 악습이다. 이젠 방향을 바꿔야 한다. 21일이면 습관이 된다는 말을 상기하자.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진정 바란다면 선언으로 그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법적 허점을 메우고 실효적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 21일 만이라도 해 보자. 수십 년간 이어진 악습이 바뀌는 건 어쩌면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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