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흘러드는 압록강은 한반도에서 제일 긴 강이다. 700리 장엄한 물줄기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르며 유유히 생을 이어 간다. 북한·중국 국경을 달리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압록강 너머 보이는 북한 마을의 지명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떠오른 방법이 바로 그 마을에 보이는 기차역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어디나 비슷하지만 북한도 지명을 따서 기차역 이름을 짓는다. 특히 압록강 건너 북한 마을에는 북부내륙선이라는 이름의 기찻길이 놓여 있다. 여러 마을 중 기억에 남는 역을 꼽으라 한다면 혜산시에 거의 이르는 길 목에 위치한 라죽역이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홀로 서 있는 건물 하나에 분명 라죽역이라는 역명을 붙여 놓았다. 산자락 아래 기차역사 하나만 달랑 세워져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라죽역 역사는 지금까지 본 다른 북한의 기차역 건물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엇보다 가운데 출입문이 없다. 특히 다른 기차역은 가운데 삼각형 지붕이 주로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붙이는 용도로 쓰인다.
그런데 라죽역엔 양쪽의 건물 규모만큼 큰 삼각형의 2층 건물이 별도로 서 있다. 기차역 앞에 인공기가 높이 세워진 것도 다른 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라죽역이 보이는 산자락을 휘감아 돌면 제법 큰 마을이 하나 보인다. 집 뒤로 가파른 산이 병풍처럼 둘렸는데 나무 한 그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밀조밀 밭으로 개간되었다.
한여름에 이곳을 보면 그나마 푸릇한 풀이 돋아나 마치 초록의 나무처럼 보이지만 수확을 다 끝낸 초겨울녘에 똑같은 곳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황폐한 땅이 그대로 드러난다. 분명 산이라 해야 하는데 뙈기밭으로 갈아엎어 생존의 장이 된 곳이다. 마침 한여름과 한겨울 똑같은 장소에서 계절의 변화를 사진에 담아낼 수 있었다.
후주역의 겨울 풍경은 하얀 눈발이 내려앉았다 하면 설원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공허함 그 자체다. 여름 풍경은 풍요 속 빈곤이라 해야 할까. 녹음이 건물을 가득 감싸지만 정작 사람의 온기는 없다. 똑같은 장소를 다른 계절에 카메라에 담으면서, 문득 자연의 시간은 흐르면서 변화를 맞지만 저 포악한 독재 체제는 왜 변하지 않는 걸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세상사 모든 일에 시작과 끝이 있듯 북녘 땅을 휘감은 김정은 정권의 어둠도 곧 걷히리라는 숙명적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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