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피감기관의 직원이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김태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직무대행이 “사람을 죽이네, 죽여”라는 말을 하면서 욕설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야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김 대행은 ‘욕은 안 한 것 같고 정회 중에 개인적인 한탄을 표현한 것 같다’며 부인했다. 그러자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마, 이 자식아”라는 막말에 이어 “법관 출신 주제에”라고 법관 전체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김 대행이 전직 판사 출신임을 겨낭한 것으로 보인다.
정회 중에 한 혼잣말일지라도 국회 청문회장에서 욕설을 했다면 이는 김 대행의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김우영 의원이 전직이 판사이지 현재는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출석한 상대방의 과거 직업을 들먹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직업이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직업인 법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발언은 사실은 법관에 대한 비하와 적대 감정의 표출이 아닐까 싶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이재명의 대장동 사건 변호인 출신으로 지난 총선에 당선된 김동아 변호사가 김어준의 유튜브에 나와서 입법부가 사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었다.
대체 이런 비하와 적대적 발언의 동기는 무엇일까. 11월15일 공직선거법 위반죄와 같은 달 25일 위증죄 선고를 앞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의 관련자들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중형을 선고하고 있어서 이 대표에게도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칼자루는 법관이 쥐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재명을 수사·기소한 검사들은 탄핵 소추로 ‘복수’하지만 법원에 대해서는 오히려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원이 원하는 입법을 도와주겠다면서 말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에 민주당이 100명 넘는 판사를 소환 조사하며 사법농단 수사를 가혹하게 밀어붙이고 헌정 사상 최초로 판사를 탄핵 소추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변화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의 속마음은 김우영 의원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노무현 이전의 민주당과 달리 인민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좌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독립된 사법부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다 좋은 줄로만 아는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자유국가들은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을 전제로 한 자유민주주의 또는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보호하고 다수의 뜻으로도 기본 제도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두었다.
반면에 인민민주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을 두는데 노동계급 중심의 일당독재를 위해 삼권분립이 아닌 권력 집중을 추구한다. 입법·사법·행정부는 당 중앙의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거나 확인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중국·러시아·북한 등이 그렇다. 이 경우는 세습 황제만 없다뿐이지 그 자리를 대신한 공산당이나 노동당의 일당독재 체제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사법부라고 해서 ‘민주적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 임명 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지명했던 대법원장이 다수당인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해 임명이 좌절되었다. 이게 바로 민주적 통제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는 제한된 통제이지 전체 판사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법관 출신 주제에’란 비하와 ‘민주적 통제’라는 적대를 결합하면 이는 판사를 선거로 뽑자는 ‘판사 직선제’나 판사를 처벌하자는 ‘법 왜곡죄’ 도입으로 귀결되게 된다. 검사와 수사기관을 대상으로 한 법 왜곡죄는 이미 민주당에 의해 발의되어 있다. 만약 통과된다면 법관도 통제 범위에 포함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판사 선출제는 지금 멕시코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다. 멕시코는 2000년까지는 우파 성향 제도혁명당이 장기 집권했는데,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 시기인 1994년에 사법부의 권한과 독립을 강화하는 개혁이 이뤄졌다. 선거관리위원회를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키는 개혁도 이뤄졌다. 일련의 개혁으로 정치적 소수파가 보호되기 시작하자 마침내 2000년에 비센셴 폭스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정권이 교체됐다. 제도혁명당은 2012년에 다시 집권했지만 2018년에 좌파 성향 국가재건운동으로 정권이 교체되며 현재는 원내 5당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권당이 추진한 정책들이 법원의 위헌 결정으로 잇달아 좌절되는 일이 생겼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임기 내내 사법부를 공격했다. 그런데 최근 실시된 선거에서 집권당이 압승해 버렸다. 그러자 집권당은 대법관 포함 7000명의 판사 모두를 선거로 뽑는 ‘판사 직선제’ 법안을 9월11일 마침내 상원에서도 통과시켰다. 멕시코에서는 이제 변호사 경력 5년만 되면 누구나 판사에 출마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펼쳐질 일은 뻔해 보인다. 능력이 모자라는 친여당 성향 법조인들이 여당의 지원으로 대거 사법부에 진출할 것이다. 사법부는 결국 정치에 종속될 것이고 소수파는 사법부로부터 공정한 판결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왠지 1987년 이후 한국 정치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는 듯하다.
멕시코의 사례를 보면 한국 정치의 미래와 사법부의 미래가 판사들에게 달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설혹 법과 양심을 외면하고 이재명을 봐준다고 해서 이재명과 민주당이 사법부에 우호적일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다시는 판사들이 정치인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게 그들은 제도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그것은 사법 개혁으로 포장된 ‘판사 직선제’와 ‘판사 처벌법’이 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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