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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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25 00:02:50

나이 100세를 넘기고 스스로 세상과 헤어지는 방법을 선택하여 존엄하고 고귀하며 지혜롭게 떠나간 남자가 있다. 그는 반전 평화론자이고 노동운동가이며 자연주의자이고 채식주의자였다. 떠날 즈음, 평생 누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냐는 지인의 질문에 그는 “간디, 톨스토이 그리고 헬렌이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방 한편에 있던 그의 아내 헬렌이 행복의 함성을 지르며 소녀처럼 그에게 달려와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곡기를 끊고 서서히 영혼의 출구를 향한 남자의 이름은 스콧 니어링, 아내의 이름은 헬렌 니어링이다.

그들은 반세기가 넘는 53년을 동반자로 지냈다. 스콧의 기운과 의식이 흐려지며 죽음의 입구에 가까이 갔던 때에 스콧은 헬렌에게 “당신은 나의 훌륭한 동료였소.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소”라고 고백했다.

그들의 만남은 헬렌이 24살이던 때에 시작되었다. 헬렌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으며 신지학회 회원으로서 영성과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스콧 니어링이라는 학자를 지역사회 강연자로 초대하고 싶어 딸인 헬렌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조우는 소낙비가 되었다. 첫 번째 둘만의 만남에서 헬렌은 스콧의 뺨에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어떤 확신이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했다. 당시 스콧 니어링은 미국 사회의 반항자로 낙인찍혀 두 번이나 교수직에서 쫒겨 나고 가족과도 헤어져 있었다. 그는 생의 밑바닥에 있었다. 해임의 사유는 정의로움과 용기였다.

스콧은 광산업자인 할아버지가 이룬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노동자의 아픈 삶을 알았다. 그는 아동 노동 착취 반대와 반전·평화를 외쳤다. 단박에 위험 인물이 된 그는 지인의 표현대로 ‘자신이 건널 다리를 자신의 손으로 불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헬렌은 스콧을 사랑했다. 수많은 귀족·부자들의 청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녀 시절 헬렌은 인도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6년간 플라토닉 사랑을 했었다.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소녀였고 학창 시절의 별명도 너티(nutty·약간 맛이 간 사람)였다. 하지만 헬렌은 만능이었다. 그림·음악(바이올린)·체육·사회활동… 무엇이든 잘했다. 중요한 건 그녀의 마음이 누구를 향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 스콧은 21살 연상이었다.

스콧 또한 이 아가씨와의 만남이 범상치 않은 일임을 알았다. 그는 발랄하고 유복한 아가씨의 마음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외가가 있는 네덜란드로 가서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했다. 그곳에서 젊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열어 둔 것이다.

그 시절 그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사랑을 대하는 스콧의 신중하고 배려 깊은 진심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녀가 언제든 자신에게서 떠나도 좋으며 동시에 그녀가 떠난다면 상실감이 클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꽃이 열매로 전환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헬렌은 스콧의 충고에 따라 뉴욕에서 주급 13달러를 받으며 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는 생활도 경험했다.

본격적으로 함께하는 삶은 이후에 펼쳐졌다. 그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함께 일했다. 사회 개혁·노동운동·반전운동·평화 운동·의식 개혁이 주제였다. 스콧은 평생 50권의 책을 썼다. 헬렌과 함께 쓴 책도 다수이다.

그들은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다. ‘조화로운 삶’이 그들의 과제였다. 하지만 가진 것이 적은 그들은 도시에서 이러한 삶을 이룰 수 없었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뉴욕 근처 시골로 향했다. 지붕이 새고 수세식 화장실도 없는, 쓰러져 가는 헌 집 한 채가 달랑 있는 버몬트의 농장을 구입해 두 발로 걷고 손으로 일하는 새로운 시작에 도전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루 4시간의 노동이었다. 세금과 보험료를 마련하기 위해 단풍나무 시럽을 만들어 팔았지만 대형 백화점에서 납품하라는 것은 거절했다. 부의 축적은 그들의 관심 밖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동 이후의 시간은 독서와 토론·음악 감상으로 보냈다. 모든 것이 소박했다. 당장 입을 옷 몇 벌, 농장에서 거둔 수확물, 야채와 과일과 곡물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자급자족이 답이었다. 집도 직접 지었다. 무려 9채의 돌담집을 기계가 아닌 최소한의 도구의 힘을 빌어 손으로 지었다.

버몬트가 관광지로 개발되자 그곳을 떠나 북부 메인주에 다시금 농장을 차렸다. 그때는 헬렌이 50대, 스콧이 70대의 나이였다. 그들은 새로운 농장에서도 똑같이 살았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들의 삶을 배우고자 했고 방송에서도 특집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위해 찾아왔다. 스콧은 지속적으로 책을 쓰고 부르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강연을 했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조화를 이룬 삶을 그들은 공유했다. 두 사람 다 건강했고 행복했다.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뜻을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희망을 나누고 꽃을 나누었다.

스콧을 바라보는 헬렌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든지 남편을 가질 수는 있으나 현인(멘토)을 갖기는 어려운데 그 둘의 결합은 유익한 만큼 드문 일이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많이 달랐다. 공통점이라면 채식주의자라는 것과 프로테스탄트(청교도)의 금욕적 배경을 가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정도였다.

곧 가정의 달이다. 모두의 귀감이 되는 사랑의 시작과 삶의 마무리를 스콧과 헬렌 부부에게서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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