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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인데 왜 이렇게 바쁜 걸까요?”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C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에게 수영장보다는 학원 스케줄표를 먼저 챙겨 줬다. 아이 스스로도 “방학인데 친구랑 노는 건 언제 해요?”라고 묻는다. 명목상 휴식기여야 할 방학이지만 실상은 학교 수업 때보다 더 바쁜 학습 일정이 아이들을 덮친다.
2024년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하루 평균 5시간 5분을 학습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년 전보다 19분 증가한 수치다. 반면 놀이·게임 등 여가 활동에 사용하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2분으로 전년 대비 4분 줄었다. 이처럼 놀이는 줄고 공부는 늘어나는 흐름은 방학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사교육·자율학습 등 ‘학교 밖 학습’에 참여하는 초등학생 비율은 무려 94.8%에 달한다.
아이들의 삶은 통계 속 수치보다 훨씬 단단한 현실로 다가온다. 학원·보충수업·캠프 등으로 이어지는 일정은 방학이라는 틀을 학습의 연장선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다. ‘방학 독서캠프’ ‘수학 집중반’ ‘의대 준비반’ 등 이름만 그럴싸한 프로그램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놀이터는 한산하다.
심리적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놀이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회복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뛰고 부딪히며 생기는 신체 활동은 창의성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 필수이지만 지금의 방학은 오히려 정서적 고립과 학습 피로를 심화시키고 있다.
아이들은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몸으로 신호를 보낸다. 수업 중에 엎드리는 아이, 숙제를 미뤄 두는 아이, 친구보다 스마트폰을 찾는 아이는 모두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방학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시기”라며 아이들을 다시 책상 앞으로 밀어 넣는다. 학부모들 사이에도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와 방학 기간을 ‘놀이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방학은 충분한 휴식과 자기주도적 활동으로 채워지며 정규 교육과정에도 창의 활동과 야외 체험이 비중 있게 구성돼 있다. 반면 한국의 방학은 여전히 ‘학습 효율 극대화의 시간’이라는 인식 아래 운영되고 있다. 방학 보충수업을 권장하거나 캠프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학습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는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빼앗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방학 중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는 물놀이 축제, 야외 체험 행사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지역 편차도 크다. 무엇보다 공교육 체제 안에서 ‘방학은 쉬어도 된다’는 인식과 정책 설계가 함께 가야 하지만 현재 교육부 정책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구조적 변화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방학은 놓아 두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어야 한다. 마음껏 놀고 느긋하게 쉬고 친구와 어울리며 몸과 마음을 다시 채우고 회복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방학마저 경쟁으로 채워지고 있다. 놀이터보다 학원이 익숙한 아이들, 햇살보다 형광등 불빛 아래 오래 앉아 있는 아이들. 그들 속에서 자라고 있는 건 교육의 미래가 아니라 피로의 누적일지도 모른다.
방학은 누구의 것인가. 어른의 불안이 아닌 아이의 권리가 중심이 될 때 비로소 진짜 방학이 시작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수업이 아니라 더 많은 햇빛과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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