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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상업영화가 살아야 독립영화도 산다
독립영화, 부조리한 현실에 관심·영화로 재현한다는 선입견
아카데미상, 2000년대 이후 주류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 예찬
독립영화, 영화의 다양성을 더해 주는 고명같은 존재일 뿐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0 00:02:57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독립영화가 영화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얼마 전 끝난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은 독립영화(인디 필름) 잔치로 일관했다. 나는 독립영화란 주류 영화가 튼튼하게 성장해야 살 수 있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독립영화가 무의미하거나 존재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독립 영화는 자립이 어렵고, 흥행에 성공한다 해도 그 규모가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아카데미상이 독립영화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은 독립영화가 영화 흐름을 주도한 효과라기보다는 아카데미 상의 심사위원단이 여러 나라·여러 분야로 확대되면서 투표 경향이 변했다는 방증이다. 상업영화라면 이유 없이 이윤만 추구할 뿐이며 영화의 예술성을 외면한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독립영화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현실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영화로 재현한다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떤 영화를 만들지 기획을 하고 판권 계약·시나리오 개발·배우나 감독·촬영·음향·녹음·색 보정 등 각 분야에 필요한 인력과 계약하는 준비 과정(프리 프로덕션), 이것이 마무리되면 실제 촬영에 들어가는 촬영 과정(프로덕션), 촬영을 마친 영상을 기술적으로 마무리하는 후반 작업(포스트 프로덕션) 등 크게 3단계로 나뉜다. 규모가 큰 상업 영화나 소규모 제작으로 이루어지는 독립영화나 모두 마찬가지다.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와 다른 부분은 상업영화 제작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계약은 최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독립영화는 그걸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통 몇 백만 원, 많다고 해야 몇 천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쓰기 때문에 출연 배우나 스탭들에게 정상적인 인건비를 지불하기 어렵다. 제작비도 조달하기 어려운 판에 인건비를 충분히 지출하기 어려우니 대부분 노력 봉사나 열정 페이 수준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영화를 만든다 해도 정상적인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잘해야 몇 천·몇 만 정도의 관객을 끌어모을 뿐이다. 수백 편의 독립 영화 중 흥행작이 나올 지 말 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영화관의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독립영화가 영화의 저변을 넓히는 힘이라는 막연한 주장은 영화계를 지켜 주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미국 영화계나 한국 영화계나 모두 마찬가지다.
 
1927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상은 미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계를 여론의 비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의 하나였다. 할리우드 영화계가 기독교적 윤리관을 벗어나 타락과 방종이 뒤범벅된 범죄의 온상이라는 비난과 함께 배우들이 사치스럽고 난잡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여론에 휩싸였다. 영화제작자들은 이 같은 여론의 집중 포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건전한 영화를 선정해 매년 시상하는 아카데미 영화상을 만드는 한편 헤이스 코드라고 불린 영화 검열 규칙을 만들어 욕설이나 폭력·외설 등을 규제하는 기준을 만들었다. 영화계의 자정 운동인 셈인데 이를 통해 대중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 아카데미상의 권위는 세계 최고라고 할 만큼 겨룰 만한 상대가 없었다. 후보에 오르기만 해도 주목을 받았고 작품상이나 남녀주연상이라도 받으면 1억 달러 이상 흥행 가치가 올라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종차별 금지와 남녀차별 금지 등이 이슈가 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성소수자의 차별 금지같은 문제가 반영되면서 주류 상업영화보다는 슬금슬금 독립영화를 예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알콜중독자의 이야기를 다룬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나 농아자들의 일상을 그린 코다’(2021)와 올해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아노라’(2024) 같은 영화들은 독립영화들이다.
 
한국 영화 기생충에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수여한 것도 아카데미상의 다양성을 높인다는 취지였겠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미국 영화도 아니고 영어를 사용한 작품도 아닌데도 중요한 본상인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안기다니. 아카데미가 한 해 동안 공개된 영화 중에서 최고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상(Awards)이 아니라 여러나라 영화들이 참여하는 영화제(Festival)로 바뀐 것인가
 
그동안 아카데미상이 미국 영화, 그중에서도 주류 상업영화 위주로 운영되왔다는 거센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주 다급하거나 무리한 방식으로. 그야말로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는 꼴이고 좁쌀 주우려다 쌀자루 쏟는 격이다. 토끼 100마리 모은다고 호랑이 한 마리를 당할 수 있는가.
 
독립영화는 영화의 다양성을 더해 주는 고명 같은 존재는 될지라도 주류 상업영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관객이 소외되는 영화 잔치는 영화산업을 오히려 위축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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