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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서울대 법대… 나라고 못 갈 이유가 뭔가
어느 날,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가장 골짜기 동네인 남산 구비기라는 동네에 사는 친구가 “우리 마을에 서울대 법대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며 자랑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런 산골짝에서도 서울대 법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고 못 갈 이유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후 집에서는 혼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글자 그대로 ‘코피 터지게’ 공부했다. 그러자 시골 중학교에서는 유례없는 높은 성적을 받았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서 천재가 났다”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아마 모르고 한 소리였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유난히 춥고 으스스했던 겨울
중학교를 마칠 즈음,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시국이 어수선해졌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자신의 은사이자 상관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것이다. 시골 아이들에게는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해 겨울은 여느 때보다 유난히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김재규 부장이 사고를 치고 나서 “형님, 한다면 합니다!”고 외쳤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나에게는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1980년, 읍내에 있는 밀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형들은 모두 마산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는데,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시절에는 경상도도 이미 뺑뺑이(무시험) 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밀양에 남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그런대로 잘 봤다. 중학교 1‧2학년 때 배운 내용에서 몇 개 틀리고, 중학교 3학년 때 배운 내용은 거의 다 맞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야말로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했다. 1학년 때는 집에서 10km 정도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했다. 1학년 2학기 때 드디어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거의 전 과목에서 수를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학년이 끝나갈 즈음에 “너 같은 아이가 잘돼야 한다”며 격려해 주셨다.
기초학력 부족으로 쉽지 않았던 고등학교 공부
그런데, 나에게 고등학교 공부는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기초학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쉽게 극복이 되지 않았다. 특히 수학과 영어가 문제였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입학 전 학원에서 이미 ‘성문(成文) 기본영어’를 뗐다느니, ‘성문(成文) 정통영어’를 배웠다느니 했는데, 나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도통 몰랐다. 과외라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남들이 다 다닌 유치원이란 곳이 있다는 것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 나의 사정이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시골에서 별다른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오로지 학교에서 지정해 준 독서실에서 죽어라고 공부해야만 했다. 국어와 국사 등 인문사회 과목은 재미도 있었고, 내가 가장 잘했다. 모의고사를 치면 항상 국어 성적이 수학 성적보다 더 높게 나왔다.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수학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지원했으나 낙방
입시 공부만 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추억거리가 없다. 그저 고등학교 시절에도 독서는 꾸준히 했다. 집에 형님이 사다 놓은 책들이 있었는데 동서문화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전집도 있어서 두루 읽어 보았다. 한때 도스토옙스키에 매료되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읽었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내용을 완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를 묘사한 부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는 입시 위주의 공부에 회의를 품게 되어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1982년 치른 학력고사에서는 썩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지 못했다. 수학 25개 문항 중에서 여덟 문제를 찍었는데, 불행히도 모두 빗나갔다. 여덟 문제 중에서 두 문제만 맞았어도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운이 없었다. 수학 한 과목에서 잃은 점수가 전체 과목에서 잃은 점수를 합한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결국 나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원서를 냈다가 간발의 차로 떨어졌다.
고시 3과에 최연소‧차석‧수석으로 합격한 고승덕 씨, 한때 나의 영웅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형이 보던 고시 잡지에서 고승덕이라는 사람이 쓴 ‘4년간의 휴가’라는 장문의 합격 수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소위 사법고시‧외무고시‧행정고시의 3과를 최연소‧차석‧수석으로 합격한 사람의 수기였다. 나는 그의 합격 수기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공부하기 힘들 때마다 꺼내서 읽곤 했다. 그 글 덕분에 힘든 수험생활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때는 그가 나의 영웅이었다.
그 후 고승덕 씨는 박태준 회장의 사위가 되었는데, 김대중 정권 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그 후에 그는 증권 전문가로 변신하여 TV에도 자주 얼굴을 내미는 모양이었다. 나는 국내 부서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고승덕 씨에 대해 들었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는 2024년 총선 때에는 서울 서초에선가 당선되었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조갑제 리즈 시절의 ‘마당’ 잡지도 탐독
그즈음 나는 ‘마당’이란 잡지의 오효진 기자가 쓴 ‘고등학교는 시험 선수 양성소인가?’라는 글도 인상 깊게 읽었다. 이분은 그 후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 군수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에 그 잡지는 아마도 젊은 시절의 조갑제 씨가 편집했던 것 같다. 그 잡지는 지질도 좋았지만 내용은 더 좋았다. 편집도 잘 되었고 사진도 좋았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넌더리를 내던 때였기에 잡지에서 읽은 그 글이 더욱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시험 선수’라는 말이 한동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성격이 좀 재미없는 사람이어서 별명이란 게 없다. 아주 어릴 때에는 ‘역도산’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역도산은 일본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이다. 프로레슬러 김일의 스승이었다는 설도 있었다.
내 별명은 ‘역도산’ ‘소크라테스’
나는 우리 형제들 중에서 키가 제일 컸다. 터울이 많이 진 탓에 어머니의 영양 상태가 회복된 덕분이었던지, 아니면 원기소를 많이 먹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쨌거나 발육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머슴이던 우 아저씨가 나에게 ‘역도산’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듣기 싫지 않은 별명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소크라테스’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학교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얘기 중에 소크라테스 얘기가 나왔는데, 친구들은 “악법도 법이다”며 사약을 들이킨 소크라테스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자기의 소신에 따라 죽는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고 하면서 소크라테스를 변호했다. 그때부터 친구들은 나를 ‘소크라테스’라고 불렀다. 요즘도 가끔 인터넷에 글을 쓸 때면 ‘소크라테스’라는 필명을 쓸 때가 있다. ‘김남천’이라는 가명을 쓸 때도 있다. 물론 남천강(밀양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김기삼 프로필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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