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19일에 체결된 북·러 신조약은 국제적 제재로 인한 봉쇄로 고립된 북한과 러시아가 잠재적으로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전략적 군사협력에 초점을 맞춰 동반자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냉전시대의 동맹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적 제재로 고립이 심화된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로부터 전폭적 지지·후원과 함께 경제·군사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장기 소모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빈국 수준에 가깝지만 군사대국인 북한의 군사 지원이 절실한 형국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국제적 제재와 봉쇄로 고립이 심화되고 경제·식량·에너지 등 복합적 국력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이 절실한 국면이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틀 속에서 미국의 확장억제(핵 공격에 대한 억제력을 타국에도 확장 제공하는 것)를 보장받으면서 첨단 재래식 무기체계 기반의 압도적 대북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 대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2024년 6월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전문을 공개했다. 동 조약은 총 23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고,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한 날로부터 무기한 효력을 가지며, 효력 중지는 일방이 서면으로 통지받은 날로부터 1년 후에 발생하도록 명시되었다.
동 조약의 핵심 조항은 1961년 체결된 ‘조·소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 제1조의 ‘자동군사개입’ 조항과 비교되는 제4조로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동 조약의 효력이 발생하는 날로부터 2000년 2월9일에 채택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의 효력은 상실되기 때문에 사실상 1961년의 북·소 동맹체제로 복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푸틴과 김정은의 회담 결과 설명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김정은은 ‘동맹’이라고 세 차례 언급했으나, 푸틴은 ‘질적 격상’과 ‘새로운 수준’이라고 강조하는 데 그쳐 상황에 따라 군사 개입에서 발을 빼거나 물러설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도 해석된다.
북·러 신조약은 전형적 동맹협정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가운데 양국은 적국이 동맹국 영토를 공격할 경우 이를 자국 공격으로 받아들여 자동 군사개입이 가능하도록 보장했지만, 북·러 협정문에는 이런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미국처럼 조약이나 협약에 대해 성실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협정의 내용을 무조건 이행하기보다는 당면한 상황과 이해관계 등을 따져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한 것은 북·러 새 조약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양국 간에 이해관계가 일치됨에 따른 편의적 의기 투합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탄약과 미사일이 필요하고, 북한은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를 위한 첨단 군사기술이 다급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심각하게 우려하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국제 제재로 고립이 심화하는 두 전체주의 국가의 밀착으로 군사 부문의 협력이 강도 높게 전개될 가능성을 주시하며 안보지형에 몰아닥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물자가 고갈되는 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 대량으로 무기·장비 및 포탄을 지원받음으로써 전쟁의 우세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군사 지원의 반대급부로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받아 중·단거리 미사일, 장거리 미사일, 정찰위성 등 전략형 무기를 급속도로 고도화하는 최악의 상호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두 나라의 관계 심화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호관계를 형성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북·러의 상호의존적 밀착이 장기적으로 유럽 안보에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 등 전체주의 국가들의 대러시아 군사 지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유럽 안보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의도대로 종결될 경우 러시아의 침공이 동유럽 동맹국들에게도 닥쳐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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