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이게 왜 네 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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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05 00:02:30

“내 돈을 왜 못 찾냐?” “이게 왜 네 돈이야?” 불법 도박 사이트 이용자와 도박 관리자의 대화가 인터넷에서 화제다. 불법 도박은 어차피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는 대화로 국내 주식시장에도 자주 비유된다.

국장(국내 주식시장)엔 절대로 (투자)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도박 사이트 관리자와 비교되는 것이 기업 오너다. 주주들보다는 오너 일가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려서 주가가 떨어지는 일이 잦다 보니 전액 ‘먹튀’는 아니더라도 하는 짓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올해 7월 두산그룹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계획이었는데 이번에 역대급 사례가 하나 더 나왔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발표함에 따라 10월29일 기준 154만3000원까지 올랐던 고려아연 주가가 86만4000원대까지 내려갔다가 100만 원대에 형성됐다.

차입금을 사용해 주식을 89만 원에 사들이고 유상증자를 통해 추정가 67만 원에 판매하는 신기한 행보다. 고려아연은 10월22일 기자회견에서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 원이라는 헐값에 사들이려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증권가 등에서 분석한 결과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MBK·영풍의 지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발표에 대해 “회사의 주인이 전체 주주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다”며 “고려아연 일개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감독원이 현장검사에 돌입하자 고려아연은 유상증자에 대한 오해가 많아 실례를 무릅쓰고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고려아연은 “일반공모 증자 추진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조심스레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왜 오해는 항상 오너보다는 소액주주들이 손해 보는 방향으로 발생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기업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 가치를 한순간에 증발시킨 건 실례로 끝날 일이 아니고 조심은 주가 폭락을 일으킬만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했어야 한다.

유상증자 결정 당시 사용한 용어는 더 가관이다. 대한민국 국가전략산업 육성 등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통해 국민 기업으로의 도약을 추진한다고 한다. 잘 보니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로부터 회사 및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말도 써놨다. 소액주주는 이해관계자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선언한 거라면 이 나라 주식이 원래 이렇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고려아연은 이제까지 ‘최고 수준의 주주환원’과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강조해 왔고 국가 기간산업의 중요성과 경영 능력을 강변하며 스스로를 정의의 편으로 포장해 왔다. 유상증자를 발표한 뒤에도 비슷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 그렇게 정의롭고 무거운 사명을 짊어지고 있으니 주주들 뒤통수는 때려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고려아연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걸 생각하고 상식적인 행보를 보여 주길 바란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거래소 이름을 불법도박 광고 문구처럼 ‘안전한 놀이터 최고 수준의 주주환원 보장’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양준규 기자 jgy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