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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가졌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암 투병 중 끝내 영면에 들었다. 노동·시민운동을 위해 한 생애를 바친 고인은 평생의 숙원인 ‘정치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는커녕 난장판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 정치판을 한탄하면서 영원히 먼 길을 떠났다.
장 원장은 올해 7월 페이스북에 친구·지지자에게 쓴 편지를 통해 담낭암 말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면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다가올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너무도 빨리 전해진 그의 부고는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으리라.
서울대 법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장기표가 지나온 행적이 주로 ‘재야’를 무대로 자취를 남겼음에도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긴 글이다. 그는 “장기표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며 “내가 대학생 시절 김근태 선생과 함께 마음속 깊이 존경했던 대선배이셨다. 그런 분이 왜 전격적인 정치적 우향우를 했는지 상세히 알지 못한다. 이제 영원한 안식을 빌 뿐”이라고 적었다.
조국 대표는 자신이 상세히 알지 못한다고 밝힌 ‘장기표의 전격적인 정치적 우향우’ 이유를 알려고 마음만 먹었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누구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초 BBS불교방송은 그 무렵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졌던 ‘조국 법무장관 사퇴’ 대규모 시위와 관련해 당시 장기표 국민의 소리 공동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장기표는 이렇게 답했다. “광화문에서 있었던 집회는 조국 씨 같은 진짜 범죄의 종합세트인, 또 거기다가 위선과 거짓의 화신인 조국 씨 같은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퇴진해야 된다 하는 그런 요구를 내거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저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장 원장은 조국 당시 법무장관을 향해 ‘위선과 거짓의 화신’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뿐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사안을 공론화’하는 데에도 앞장 선 이가 장 원장이다. 이동호 변호사는 본지 8월22일자 칼럼에서 장 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의 성남 대장동 비리 의혹”을 터뜨렸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장 원장이 이재명 후보 아들이 천화동인에 근무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으로 포문을 열었고 이에 대한 이재명 본인과 캠프의 공식 대응으로 마침내 이재명 비리 보도의 물꼬가 터지게 됐다. “그 전까지는 이재명의 집요한 고소·고발이 두려워 메이저 언론도 그의 비리에 관한 보도를 주저했을 정도였다”고 이 변호사는 전한다. 이재명 비리 공론화를 주도했던 장기표의 용기와 의지가 없었더라면 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0.7%p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이재명의 당선을 막을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장 원장은 지난 4‧10 총선 이후 밤을 새워 ‘위기의 한국-추락이냐 도약이냐’를 집필했다. 그는 책에서 “4.10 선거에서 ‘범죄자 소굴’이라 불러도 별로 틀리지 않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압승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도덕성과 인간성’ 회복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가 최근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활동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이다. 그는 국회의원이 과도한 특권·파렴치한 특권을 누린다고 질타했다. 수치심을 잃은 우리 정치권, 특히 야권은 그의 질타를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장기표 원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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