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행복한 나라 만들기… 평생 헌신한 ‘영원한 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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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타계 1945~2024

전태일 사망 계기로 민주화 투신… 수배~투옥~석방의 삶
민주화 운동 보상금 한푼도 안 받아… “난 국민 도리 했을 뿐”
세 차례 대선 출마에도 제도권 정계 진출 못해… 불운의 릴레이

임한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22 17:15:46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그는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로 불렸다. 스카이데일리DB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35분쯤 입원 중이던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9세. 담낭암 투병 중이던 고인은 담낭암 발견 당시 4기였으며 입원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두 달여 전인 7월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여러 어려운 사정에서도 물심양면의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밝힌 바 있다.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했다.

1970·80년대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청계피복노조 사건·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를 당해 공안당국에 추적을 당했다.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전태일 사후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서며 남다른 정의감을 보여줬다. 이후 전태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2009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이 여사와 한동안 서울 도봉구 쌍문동 같은 동네에 살며 노동운동을 도왔다. 이 여사는 세상을 떠나던 2011년 “기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는 첫 사람이자 나에게는 영원한 스승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40대였던 1980년대부터 재야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른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변호사·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1990년에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녹색사민당·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불운은 계속 됐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2002년 재보궐선거·17·19·21대까지 7차례 선거에 나와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재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하고,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로 불렸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븍한 인권운동,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매진해 왔다. 이 운동은 국회의원들이 과도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개혁해 국민과 더 평등한 위치에서 정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2019년 12월엔 동해로 어선을 타고 탈북한 청년 2명이 문재인정부에 의해 강제 북송된 사실을 알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홀로 1인 시위에 나서 이후 탈북인들과 북한인권 운동가들의 릴레이 단식 시위를 이끌어냈다. 이때 단식에 나섰던 사람들이 모여 이듬해 만들어진 단체가 원로 탈북인 김태산 전 체코주재조선무역 대표와 이완영 전 국회의원이 이끄는 북한인권단체 ‘남북함께국민연합’이다.

지난해부터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 폐지·정당 국고보조금 폐지·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 책임을 다하고,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민주주의 강화와 정치 신뢰 회복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해왔다.

또한 그는 지난해 1월 일생의 목표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의 자아 실현을 통해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잠재된 소질과 취향을 실현해야 사람은 행복해진다”면서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