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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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인생의 전환점
1956년 2월16일, 나는 충남 논산 신병훈련소 22연대에 입대했다. 군번은 9983863. 두 달간 기초 훈련을 마치고 1200명의 신병이 광주 상무대 포병학교로 전입됐다. 포병학교에서는 105mm 곡사포를 사격하는 훈련을 두 달간 받았는데, 이곳에서는 신병을 전포대·측지포대·사격지휘포대·수송포대로 편성해 맹렬한 훈련을 실시했다. 나는 사격지휘포대에 배치되었는데 이후 포대 서무계로 발탁되어 일반 훈련병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했다.
그해 6월 말, 두 달간의 훈련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신병들은 훈련이 끝나면 전원이 제3보충대를 거쳐 전방 포병부대에 배치된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 선발되어 학교에 남아 교육계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각 포대에서 우수한 신병들이 차출되어 약 60명이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장에는 학교 본부 인사과에서 대위 한사람이 시험관으로 나왔다. 시험지 상단에 소속·계급·군번·성명을 쓰고 나자 시험관이 말했다.
“시험 시간은 한 시간이다. 한 시간 후에 제군들은 백지를 내라. 백지를 내기가 민망하면 제군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자유스럽게 써라. 수필·시·애인에게 보내는 편지·상관에 대한 불만·만화·욕설·농담·낙서…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한 시간 후에 돌아오겠다.”
시험관은 그러고는 시험장을 나가 버렸다. 참으로 희한한 시험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한참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시 한 수를 적었다. 그런데 그 시 덕분에 나는 1200대 1의 승자가 되었다. 60매의 시험지가 본부 인사과에 전달되었는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나를 뽑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광주 조선대학교 야간학부에 다니는 엘리트 장교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훈련을 마친 신병들이 트럭을 타고 포병학교 교정을 떠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육군 상등병의 계급장을 달고 포병학교 교육계 기간요원이 되었다.
군사영어반 통역사병 제1기
포병학교에는 2개월마다 1200명의 신병이 새로 입교했다. 신병들이 계속해서 입교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내게 맡겨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맡은 교육계의 업무는 교육일과 작성·교관 배치·사격실습 준비·일일 보고·월말 보고·교재 준비·안전일지 작성 등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만큼 업무가 너무나 방대하고 힘들었다.
상관들은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허세만 부리면서 졸병(상등병)인 나를 혹사했다. 그때는 타자기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서류를 일일이 펜으로 써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성심을 다해서 근무했고 또 그만큼 인정도 받았다. 주일이 되면 꼬박꼬박 상무대 군인교회에서 주일을 지켰고, 그러는 사이에 많은 상급자·장교들과 사귀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군인교회에서 알게 된 제1관구 사령부 소속 하사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내게 사병 통역관 시험에 응시하라며 지원서 한 통을 주고 갔다. 그때까지는 주특기 916의 통역장교 제도만 있었는데 육군에 처음으로 주특기 917의 통역사병 제도가 신설되어 사병 군사영어반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나는 포병학교에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던 참이라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길로 광주에 있는 제1관구 사령부에 가서 시험을 보고 당당하게 합격을 했다.
2주일 후에 육군본부에서 내게 특명이 하달되었다. 한 달간 휴가 후 1957년 4월15일 대구 동촌에 있는 부관학교 군사영어반에 입교하라는 내용이었다. 포병학교에서는 모두 깜짝 놀랐고 나를 부러워했다.
그녀의 편지
그동안 나는 군사우편을 통해 서울 침례교 선교부에서 일하고 있는 장시원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와의 서신 왕래는 힘들고 고달픈 군대 생활을 하는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통역사병 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그녀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한 달간 휴가를 보내게 되었으며 그 후 대구에 있는 부관학교 군사영어반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써서 보냈다. 그러자 얼마 후 그녀에게서 놀라운 내용의 답장이 왔다.
장시원의 편지에 의하면 평소에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선교사들, 특히 그 무섭고 엄한 애버나티 박사의 부인과 처녀 선교사인 루씨 와그너 양이 나의 근황에 대해서 자주 묻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우리들의 결혼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는데, 내가 대구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휴가 기간 중에 결혼식을 치르게 하겠다며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나는 무조건 동의한다는 말과 함께 결혼식 날짜를 잡으라는 답신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1957년 3월21일, 서울 중구 충무로5가 55번지 서울침례교회에서 선교사들과 교회 식구들만 모인 가운데 강성주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렀다. 청첩장은 아무 데도 보내지 않았다.
미8군 528군사정보대
이윽고 나는 휴가를 마치고 4월15일에 대구에 가서 부관학교 군사 영어반에 신고를 했다. 전국에서 22명의 학생이 뽑혀 왔는데 우리는 사병 군사영어반 제1기생으로 14주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매주 44시간씩 교육을 받아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교육 내용은 일반참모학·지휘 통제·전술 교리·부대 편성·작전 배치·군수 지원·군사 전문용어·문서 영작문·영문 해석·번역·통역 등이었는데 강의가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스파르타식 훈련 과정이었다.
교육이 끝나자 우리는 서울 육군본부로 보내졌다. 그리고 우리들 중 18명이 서빙고에 있는 육군 군사정보대에 배치되었다. 나도 그 18명 중의 하나였다.
군사정보대에 배치된 후 약 2주일 이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육군 소령 한 분이 오더니 우리들 18명을 상대로 일일이 개별 면접을 하고 영어 단어 등 실력 테스트를 했다. 그분은 임봉기 소령이었다. 임 소령은 영어 테스트에서 나와 수원농대 출신의 송주익을 선발했다. 그러고는 우리 두 사람을 자기 차에 태우더니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분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노량진을 지나서 대방동에 있는 주한 미8군 528군사정보대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함께 선발된 송주익과 함께 미8군 528군사정보대에서 국군 파견대로 근무하게 되었다. 미8군 528군사정보대는 서빙고에 있는 육군 군사정보대가 장교·사병 각 5명으로 구성된 파견대를 이곳으로 보내 한·미 합동 근무를 하는 곳이었다. 미군 측은 일개 중대병력이지만 특수부대로서 지휘관은 중령 계급이었다.
당시에는 한·미 양국의 작전지휘권이 미군 측에 있었기 때문에 한미양해각서 ‘미8군 정보훈령 I-65’에 의거해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군사정보 활동은 미8군 G-2의 통제와 협력을 받았다. 그래서 북한에서 넘어오는 귀순병·귀순 민간인·체포된 북한 간첩과 자수 간첩·북한에 납치되었다가 귀환하는 남한 어부들은 모두 48시간 이내에 대방동에 있는 528부대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미 합동 심문조가 이들을 심문했다.
국군 파견대도 미군들과 함께 같은 막사에서 잠을 잤고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주말 내무 사열도 미군 지휘관으로부터 받았지만 인사 관리만은 파견대 별도로 실시했다.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한·미 합동 근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서의 영역·국역, 그리고 통역이었다. 미군 측 지휘관과 국군 파견 대장이 나의 영어 실력을 특별히 인정했고 그것이 나중에 나의 운명을 새로운 고원지대로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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