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개혁파 후보 1위 ‘이변’… 5일 결선투표서 판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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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제시키안 42.5% 득표… “문호개방·서방과 대화해야”
강경파 잘릴리 38.6%… 보수 결집할 경우 결과 미지수

임한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30 18:00:34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란 대통령선거에서 이변이 일었다. 한 달 전 헬기 추락사고로 급사한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이번 투표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가 1041만여 표(42.5%)로 1위를 차지했다. 당초 6명에서 4명으로 압축된 후보들 중 유일한 개혁파였고 당선 가능성이 가장 낮아 보인 후보였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2005년 이래 처음으로 2차 투표를 거쳐야 하며 페제시키안과 잘릴리 후보가 5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이란 내무부에 따르면 잠정 완료된 개표집계 결과 강경 보수파인 사이드 잘릴리 후보가 947만여표(38.6%)로 2위, 당선이 가장 유력시됐던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 후보는 338만여표(13.8%)로 3위에 그쳤다. 오랜 경제난 속에 기득권을 향한 성난 민심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지난달 초 중도·개혁 성향 출마자 중 인지도가 떨어지는 페제시키안에게 후보 자격이 허용됐을 때만 해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 보수 지도층이 실제 당선될 리 없는 인물을 구색맞추기로 세웠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정작 선거전에 돌입하자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난 돌파’ ‘히잡 착용 여부 단속 완화’ 등 페제시키안의 공약에 여성·청년층을 중심의 지지가 모였다.

또한 차별 대상인 소수민족 출신(아제르바이잔계 부친, 쿠르드족 핏줄 모친)이라는 점도 서민층의 호감을 불렀다고 분석된다. 여기에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 등 개혁 진영 거물의 지지 선언이 잇따르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도 “페제시키안이 기회주의적 언사를 취하지 않는 매력적 인물이긴 하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다”며 “자리프 전 장관 같은 인사들이 강력하게 밀어주면서 동력이 생겼다”고 짚었다.

올해 69세인 페제시키안은 1954년 이란 북서부 마하바드 지방에서 태어났다. 1997년 심장외과 전문의(醫) 경력을 발판삼아 보건부 차관으로 발탁돼 정치권에 입문했으며 1994년 자신의 모교 타브리즈 의대 총장에 취임해 5년간 재임한 이력을 토대로 2001~2005년 보건장관까지 지냈다. 2008년 총선부터 내리 5선을 역임한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페제시키안 돌풍 배경으로 현 집권세력의 강경 보수 일변도 통치 및 민생고에 따른 민심 이반이 제일 먼저 꼽힌다. 라이시 정권은 2022년 ‘히잡 시위’를 공권력으로 강제진압한 뒤 대거 사법처리해 반정부 여론 진압에 성공한 듯 보였으나 누적된 불만 여론이 이번 대선을 통해 표출됐다는 것이다. 페제시키안은 서방과 대화하며 문호를 열어야 민생고를 풀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우리의 국경을 세계 각국으로 열지 않는 한 연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외쳤으며 히잡 착용에 대한 단속 완화 등을 내세웠다.

2022년 이란에선 22살의 마사 아미니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경찰에 구금된 후 의문사한 사건이 있었고 전국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었다. 청년층 중심의 투표 거부파는 투표 참여를 “당시 시위 때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으로 본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번 대선 투표율이 1979년 이란 공화국 출범 이후 최저인 40% 수준이었다(세계은행 자료 기준 이란 인구는 2022년 기준 8855만 명).

결선투표까지 개혁·보수 양 진영이 사활을 건 선거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지도층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온 보수파가 결선투표에서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개혁 성향 정권이 들어설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다. 페제시키안이 최종 승리하면 3년 만에 개혁파가 다시 집권해 서방과의 갈등도 완화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