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은 난간에 한가롭게 기대어 작은 술통 기울이니, 주렴으로 푸른빛 들어와 이끼에 비치네. 마음에서 탁한 물욕 가시니 편안한 집이 되고, 몸은 티없이 맑은 빛을 간직하니 길이 복된 문이라네. 그저 옛 그림 감상하고 예사로운 이야기 나누다가, 새로운 시를 자세히 논해 보네. 여러 현사들 아끼는 마음 참으로 다감하여, 오늘 찬탄의 필묵을 남기려 하네” (閒倚曲闌傾少橂 入簾蒼翠映苔痕 心除物累爲安宅 身有淸紅是福門 聊看古畵尋常話 卻把新詩仔細論 諸賢眷愛誠多感 今日那堪讚墨存).
경묵당 주인 석정(石汀) 안종원의 글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자로 된 그의 서예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글은 1920년 무렵 그가 자신의 집 사랑채에 마련한 일종의 문화공간 ‘경묵당’과 그곳에서의 모임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경묵당은 원래 안종원과 8촌 간인 화가 심전(心田) 안중식이 1907년 양천 군수를 끝으로 관직 생활을 접고 후진 양성을 위해 차린 화실 겸 사설 미술교육기관이었다. 안중식은 경묵당의 첫 제자로 사대부 출신의 이도영을 받아들였다. 그 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일본으로 유학가기 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청전 이상범을 비롯해 이당 김은호 화백 등 한국화의 토대를 닦은 거장들이 모두 안중식의 제자였다.
안중식은 1919년 4월 초순 3·1운동과 관련돼 내란죄로 경성지방법원의 예심에 회부되었다. 민족 대표 33인 중 오세창·권동진과 친한 관계였던 게 이유였다. 경찰에 잡혀가 문초를 받고 얼마 안 있어 석방되었지만 그는 이때 건강을 해쳐 몇 달 후 세상을 떠났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엔 ‘조선 예술계의 거장 안심전 화백 장서(長逝)’라는 제목으로 “조선 예술계의 손실이 막대하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안중식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경묵당에 자주 드나들던 조카뻘의 안종원이 자신의 집 사랑채에 경묵당을 다시 열었다. 안종원의 경묵당은 미술교육과 화실 공간이었던 이전 경묵당과 달리 서화가를 비롯해 문인‧언론인‧고위 관료‧재력가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임을 갖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이마무라 운레이(今村雲嶺) 등의 일본 화가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을사조약 당시 외부대신을 지내 을사오적으로 지탄받는 박제순도 경묵당의 단골손님 중 하나였다. 유림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박제순 또한 해서‧행서 등에 능한 서화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1운동 관련으로 내란죄 혐의를 받은 안중식은 반일 독립투사이고 일본인과 친일 관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문화 사랑방 경묵당의 주인이었던 안종원은 친일파인가? 안종원은 고종황제의 두 번째 부인인 순헌황귀비(엄비)의 조카 엄주익과 함께 ‘양정의숙’을 설립하고 이후 양정고등보통학교의 2대 교장을 지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양정의숙은 엄주익‧안종원이 사재를 내고 순헌황귀비가 황실 재산과 내탕금으로 자금을 지원해 설립한 학교다. 올바르게 길러 깨우치게 한다는 ‘몽이양정(蒙以養正)’의 기치를 내건 민족 교육기관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말 한마디 잘못한 죄, 글 한 줄 잘못 쓴 죄, 관직을 가졌던 죄로 친일의 낙인을 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21세기 오늘의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다면 그저 먹고살기 위해, 세상살이를 위해 친일 언행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만연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은 나라는 우리뿐이 아니다. 영국은 인도를,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했고 그 이전 미국도 18세기엔 영국의 식민지였고 캐나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였다. 현재 중부유럽의 경제 강자로 꼽히는 폴란드도 한때 국토가 쪼개져 각각 러시아‧프로이센(독일)‧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여전히 자신들을 지배했던 나라를 적대하는 건 우리뿐인 것 같다. 시대착오고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해방 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인들, 자리 깔고 누워서 문안 오나 안 오나 따지다가 병원으로 간 야당 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 그들에게 선동당해 무턱대고 친일‧반일을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국민이란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는 이제 조금 진정이 되어 가는 듯하다. 하지만 언제라도 일본과 관련된 이슈가 나타나면 야당 쪽 정치인들이 국민을 선동하는 꼴불견이 재현될 것이다.
시대착오적 주장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그들은 진보좌파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구태좌파다. 부끄러운 줄 알고 나라 망신시키는 행동을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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