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김정은이 딸 김주애(추정)를 건군절 등 각종 공식 행사에 등장시켜 주목받고 있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처음 모습을 보인 건 지난해 11월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손을 잡고 참관한 사진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에 보도되면서 부터다. 새해 첫날에는 김정은과 KN-23 탄도미사일을 시찰했고 2월 7일 건군절 75주년 기념 연회와 2월 8일 열병식에도 연이어 등장했다. 17일에는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 체육경기를 관람하는 등 총 6회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북한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며 김주애에게 ‘존경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또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는 깍듯한 호칭을 사용하였다. 심지어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기념우표에 김주애 사진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의 진위 여부는 북한 수령유일독재체제 속성상 김정은 등 극소수만 알 것이다.
필자는 겨우 10세에 불과한 딸이 이 시점에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일단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유는 김씨 일가의 이른바 유일영도체제 구축 절차 즉 후계절차를 보면 이러한 주장이 매우 성급하며 경솔한 분석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경 당 내부에서 정립해 놓은 이른바 후계자론에 기반하여 김정일의 후계 절차를 안정적으로 마무리 한 바 있다. 당시 ‘부자세습’이라는 내외의 비판에 직면한 북한은 1990년대 초반경 기존의 후계자론을 체계화하여 ‘수령후계자론’으로 정식화하고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정당화하였다. 이후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전대미문의 3대 세습(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 것에 대비하여 2000년대 중반경 ①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통해 ‘수령후계자론’를 당 내부에 비공개로 전파하고 ②통일전선부 산하 대남·대외 전용 출판매체인 평양출판사를 통해 ‘주체의 수령관’과 ‘수령후계자론’을 파일형식으로 제작하여 은밀하게 국내 주사파 운동권에도 전파한 바 있다.
수령후계자론은 수령영도계승의 필연성, 수령후계자에 대한 견해, 후계자의 지위, 후계자의 역할, 후계자 문제의 해결원칙, 후계자 문제에 대한 주체적 이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보면 북한 김씨집단의 후계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후계자가 지녀야 할 자질로는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뛰어난 사상이론적 예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계자의 덕목을 갖춘 자를 선정하는 것은 김정은이며 결국 백두혈통이라는 김정은 자식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자식 3명이 모두 10세 내외 미만으로 권력을 승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김정은의 고민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1988년생)이 대안으로 부각된 바 있다. 제8차 당대회 시 신설된 당 제1비서(비공개)가 명실상부한 후계자다.
김정은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권력을 승계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후계절차를 밟아야 한다
첫째, 수령의 영도계승성이 이루어지도록 당의 영도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정일은 30세가 되던 1972년 12월27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6차 전원회의에서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지목됐다. 그리고 38세 때인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절차를 거쳤다.
둘째, 당 수뇌부를 후계자 중심으로 결속하기 위한 체제정비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도체제 정비과정에서 최소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나 당 군사위원, 국무위원회 위원 정도의 직위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당 제1비서’의 직책을 받아야 후계자가 될 것이다.
셋째, 김주애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넷째,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이나 선군혁명론에 대한 해설권을 가져야 한다. 김정일과 김정일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 대한 독자적 해설권을 행사했다. 제8차 당대회 이후 김정은의 혁명사상인 김정은주의를 정식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끝으로 대남사업(남조선해방전략)에 대한 지도권을 가져야 한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후계 구축과정에서 당·정·군을 장악해 왔고, 마지막 단계에서 대남사업에 대한 지도권을 행사했다.
이상에서 제시한 5가지 절차를 10세에 불과한 김주애가 성년이 될 때까지 차질 없이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김주애의 부각은 김정은식 독특한 딸 사랑 행태이며 이에 코드를 맞추며 충성하는 선전선동부의 작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김정은의 딸 사랑 쇼에 허둥대며 마치 후계자로 결정된 양 떠들어 대는 국내 언론과 자칭 북한 전문가들의 행태를 보며 “착각은 자유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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