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는 카카오뱅크 앱에서 자신의 집을 계좌 조회 장소로 지정하고, 이용 시간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설정했다. 이 통장은 지정한 시간에 집 근처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회사나 외부에서는 물론 다른 은행 앱에서도 계좌를 확인할 수 없다. 평소에는 숨겨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보는 이른바 ‘나만의 비밀통장’이다.
카카오뱅크가 은행 계좌는 언제 어디서나 조회할 수 있다는 기존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입출금통장을 선보인다. 고객이 직접 계좌 노출 시간과 장소를 정하도록 설계한 ‘스텔스통장’이다. 금융서비스의 접근성과 연결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던 인터넷은행이 오히려 계좌를 숨기는 기능으로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9일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만 계좌를 확인할 수 있는 스텔스통장을 출시한다. 스텔스통장은 카카오뱅크 앱에서만 조회할 수 있다. 다른 은행이나 핀테크 앱이 제공하는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어카운트인포 등을 통해서는 계좌가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금융회사에 흩어진 계좌를 한눈에 확인하도록 연결하는 기존 금융서비스와 정반대의 방식이다.
계좌가 보이는 장소는 GPS를 기반으로 최대 3곳까지 지정할 수 있다. 설정한 장소의 반경 100m 이내에서만 조회할 수 있으며, 시간도 30분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고객의 생활 패턴에 따라 집이나 회사 등 특정 장소와 시간에만 계좌가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카카오뱅크가 이처럼 계좌 접근을 제한하는 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금융사기 등에 대비해 자산을 별도로 보호하려는 고객 수요다. 일반적인 입출금통장과 달리 외부 금융서비스와의 연결을 최소화해 제3자에게 계좌가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본지에 스텔스통장의 주요 이용 고객에 대해 “금융사기 위협에 처한 고객의 경우 다른 상품과 달리 스텔스통장까지는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안전한 개인금고 같은 것이 필요했던 고객들에게 적합한 상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정 연령이나 직업군을 주요 고객층으로 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자금을 일반 계좌와 분리해 관리하거나 금융사기 위험에 대비해 계좌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고객에게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스텔스통장은 일상적인 결제나 현금 인출보다는 별도로 보관하고 싶은 자금을 관리하는 용도에 가깝다. 카카오뱅크는 체크카드 발급과 ATM 출금 기능을 제공하지 않으며, 앱 안에서도 예·적금과 대출, 카드, 투자 상품 등 다른 금융상품과의 연결을 제한한다.
만 19세 이상 고객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기본금리는 연 1.19%다. 일반 입출금통장처럼 자유롭게 결제하고 현금을 인출하기보다는 계좌 접근을 제한하는 보안 기능에 상품의 차별점을 뒀다.
최근 금융권에서 잇따른 해킹과 금융사기 문제가 상품 출시의 직접적인 계기였는지도 관심사다. 카카오뱅크는 특정 사건에 대응해 단기간에 개발한 상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금융상품은 한두 달 만에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확인 과정을 거쳐 오랜 기간 준비한다”며 “최근 해킹이나 금융사기가 화두가 됐다고 바로 만든 상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상품을 언제 어디서나 조회하고 다른 서비스와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 일반화하면서, 기존과 다른 형태의 통장이 필요하다는 수요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과 별개로 고객이 계좌의 노출 범위를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혔다는 취지다.
스텔스통장 출시는 카카오뱅크의 수신상품 다변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카카오뱅크의 올해 3분기 말 수신 잔액은 71조8000억 원으로 처음 70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인통장’을 출시한 데 이어 이달에는 계좌 보안에 특화한 스텔스통장을 선보이며 고객 수요에 따른 상품 구성을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고객이 설정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계좌 조회를 제어하는 기술 등 스텔스통장 관련 기술에 대해서도 특허를 출원했다. 상품의 구체적인 이용 방법은 출시일인 9일부터 카카오뱅크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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