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61] 아수라장, 일단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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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2 06:30:26

태주는 민중병원 방향으로 뛰어가는 와중에 황소상 근처에서 최루탄 뒤집어쓰고 눈을 못 뜨고 한쪽에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승연이었다. 태주가 민중병원 쪽으로 퇴로를 택한 것은 병원까지 최루탄을 쏘지는 않을 거고, 환자들이 있는 곳이라 빠질 공간이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태주는 승연의 손을 잡아챘다. 승연 어깨에 멘 무거운 배낭을 벗겨 던졌다. 승연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태주가 외쳤다. 뛰어! 승연은 놀랄 여유가 없었다. 태주의 손을 잡고 태주가 이끄는 대로 뛰었다.

태주는 한 손으로는 승연의 손을 잡고, 한 손엔 쇠 파이프를 든 상태에서 경찰 2·30명과 싸우고 있던 전선 대원들에 합류했다. 싸움은 치열했다. 마치 조직폭력배 패싸움처럼 살벌했다. 태주는 승연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승연의 눈을 씻겨야 해서 지하철 플랫폼 화장실로 내려갔다. 태주와 승연은 서로 여긴 어쩐 일인지 묻지 않았다.

태주는 승연이 진정되면 그녀를 집으로 보내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려 했다. 학생들이 건물 안에 남아 있던 상황이라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봐야 했고 승연은 걸림돌이었다. 태주는 승연에게 집으로 가길 권했다.

저 안에 기순이·선희가 있어요. 걔들 놔두고 못 가요. 건대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본관으로 들어간 학생들은 포위 상태에서 저항하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시 건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태주는 승연이 귀가를 거부하자 오산 캠퍼스로 돌아가자고 했다.

쉴 곳이 필요했다. 매운 가스 냄새 밴 옷을 털어 내고 지친 몸을 잠시 달래기로 했다. 태주의 자취방은 아름식당 뒤 50여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반 한옥·반 슬라브인 집 끝방이 태주 자취방이었다. 남자 자취방답지 않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작은 창문 아래 책상, 그 옆에 조립식 옷장 하나가 전부였다. 방문 오른쪽으로 여름용 차렵이불이 얌전하게 개켜 있었다.

조석으로 날씨가 쌀쌀한데 가을용 이불로 못 바꿨구나…. 승연은 방문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태주는 조립식 옷장에서 단추 달린 곤색 체크무늬 셔츠를 꺼내 승연에게 건넸다. 그걸로 갈아입어. 입고 있는 옷에서 가스 냄새나, 털어 줄게. 태주는 승연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태주가 최루 가루를 턴 승연의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밤에 건대 근처로 다시 갈 거야. 태주는 갑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집으로 돌아가. 승연이 너 한가하게 보살필 여력이 없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동지들은 못 나올 거다.”

태주는 낮의 상황을 보고 다음 결과를 예상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참담해 보이진 않았다. 무엇엔가에 단련된다는 것은 감정을 담보로 하는 것이란 걸 태주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본 승연은 전선 대장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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