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33] 휘모리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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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24 06:30:28

회장은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소매로 쓱 닦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말하는데도 저렇게 숨이 가쁜데 연주는 어떻게 하려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회장은 쉬지 않고 장구통의 소재·종류·역사 등을 설명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지하 1층 동아리 방엔 창문을 열어 놨어도 바람이 들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이야 별문제 없다. 동아리 회장은 계속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 가며 설명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결렸다. 다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 몇 번씩이나 양반다리를 풀었다 접었다 했다. 설명한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기초과정을 설명하는 이유가 있겠지 생각했다. 정기순은 화가 난 표정이었다. 기순이는 일부러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때리는 시늉을 했다. 허리로 갔던 주먹은 어깨로 갔고 가끔 한숨을 길게 내보내기도 했다. 그만하라는 신호였다. 눈치 없는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긴 설명을 이어 갔다.

“거의 다 왔어. 마지막으로 장구채 설명할게. 장구채로는 궁채와 열채가 있는데, 대나무 뿌리를 잘 삶아서 똑바로 편 다음, 끝부분에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나무나 뿔을 동그랗게 끼워서 만든 게 궁채고 대나무를 얇게 깎아서 만든 게 열채야. 오른손엔 열채, 왼손엔 궁채를 들고 장단을 맞추는데 열채 음은 가늘고 높으며 궁채 음은 낮고 두껍지. 궁편을 손으로 치기도 해. 기본적으로 대나무 채인 이 열채는 오른손에 쥐는데, 손바닥 전체를 사용해서 꽉 움켜쥐는 게 아니라 네 손가락에 붙이고 엄지손가락으로 지탱하는 형식으로 채를 잡아. 힘을 빼고 치는 게 좋은데 힘 빼는 건 자주 쳐 봐야 그 느낌을 알게 되지. 간단한 설명은 이걸로 끝이야.”

질문? 간단한 설명이라고? 기순의 눈은 커졌고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미친 거 아냐?’ 소리 내지 않았을 뿐 기순이 뭐라고 하는지 입 모양만 봐도 알았다. 회장의 설명 중 기억나는 것은 개 가죽이니 통장구·쪽장구 정도 빼고 없었다. 기순은 승연이 따라 등록한 걸 후회하는 눈빛이었다. 국문과 학생도 허리를 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 다신 안 나올 게 뻔했다.

30분 이상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설명을 들으니 장구를 두드리기도 전에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이었다. 승연이 저린 다리를 이리저리 비트는 사이, 회장은 질문 없으면 바로 실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열채로 장고 궁편 바닥 두드리는 방법을 설명했다.

“다닥·기·닥. 바닥을 칠 때 기, 옆으로 살짝 내려서 치면 닥, 기·닥이라고 합니다. 열채 잡은 손을 꽉 쥐고 바닥을 가볍게 기, 닥을 칠 때는 조금 오래 머무세요. 다 같이 음율에 맞춰 기·닥 해 보실래요?”

기·닥 한 번씩 때리다가 두 번씩 다닥·다닥·기기 닥닥. 휘모리 치실 때 이렇게 나중에 이런 느낌으로. 회장의 손놀림은 유연했다. 승연이 질문했다. 근데 휘모리가 뭐예요? 바람이 휘하고 몰아친다고 표현하지, 마찬가지로 빠르게 휘몰아칠 때 장단을 휘모리장단이라고 해. 언제 들어왔는지 승연의 등 뒤에 선 김태주가 대답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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