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5] 아버지의 칭찬을 듣고 싶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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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에겐 엄하고 남에겐 관대한 아버지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5 06:30:10

달봉이는 두 번 조를 것도 없이 혼자서도 잘 놀았다. 십자가에 새총을 쏘아 맞히거나 설교단에 올라가 제멋대로 촛대를 흔들었다. 탁종을 두드려 대고 노래하며 개 다리 춤을 추기도 했다. 아버지의 목사 가운을 걸치고 교회를 쓸고 돌아다니거나 성찬 때 쓸 떡과 포도즙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는 설교단에 벌렁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 사실을 다 알면서도 아버지는 혼내지 않았다. 달봉에게 너그러운 아버지의 처사는 어린 나에겐 이해되지 않았다. 다섯 살 때 십자가에 입을 맞추려고 설교단에 기어 올라갔다가 넘어진 나를 엄하게 꾸짖던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왜 올라갔느냐고 묻지 않았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났는데도 다친 데는 없느냐 묻지도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본 것은 다만, 촛대와 방금 불을 켠 초가 바닥에 뒹굴던 모습이었다. “마당 좀 쓸어라.” 아버지가 명하고 들어간 뒤 내 키보다 큰 빗자루를 들고 힘들게 쓸어 놓았을 때도 모아 놓은 낙엽 더미를 돌풍이 어지럽게 흩어 놓은 아수라장만 보고는 마당 하나 제대로 쓸지 못한다고 혼을 냈다. 그렇게 나의 선의는 아버지의 눈앞에서 번번이 빗나갔다.

달봉이가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혼이 났는지도 몰랐다. 오래 가슴에 묻어 두는 나와 달리 달봉은 꾸중을 들어도 그때뿐이었다. 지청구를 듣고 나서도 “뭘 도와드릴까요?” “이건 제가 할게요.” 재잘거리며 아버지를 졸랑졸랑 따라다녔다. 시키지 않아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레를 들고나와서는 네 발로 교회 바닥을 신나게 밀고 다녔다.

달봉이가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는 날도 있었다. 다람쥐와 토끼를 쫓아다닌다고 교회 뒷산을 헤매고 뛰어다닌 날이면 저녁을 뚝딱 먹고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초저녁부터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담뿍 안아다가 내 방에, 내 요 위에, 내 이불을 덮어 뉘었다. 보육원에는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했다.

천하태평 잠든 달봉의 얼굴은 밉살스럽기 그지없었다. 다음 날 아침, 부스스 잠이 깬 달봉에게 “아예 교회에 와서 살면 어떻겠느냐?” 아버지가 물으면 앗, 뜨거워라! 꽁무니를 내빼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일주일도 못 되어 다시 아버지와 내가 있는 교회로 돌아왔다.

달봉이의 엄마 천길자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당시에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달봉이의 부모를 찾기 위해 보육원과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애를 썼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 후 소문과 정황을 종합해서 사연을 추측할 수 있었다.

천길자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달봉의 아버지는 명동의 한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그녀의 부모가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할 리 없었다. 남자는 떠나고 딸의 장래를 염려한 부모는 갓 태어난 달봉을 이름도 지어 주지 않은 채 보육원에 맡겼다. 대학을 중퇴한 천길자는 부모의 뜻대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혼당했고 그녀의 원망을 못 이긴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아이의 행방을 알려주 었다. 아버지가 달봉의 부모를 수소문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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