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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최대 뉴스는 무엇보다 중국인들의 활약상이다. 역대 최다 지원자(642명) 중 바르샤바 본선행을 달성한 20개국 총 85명 가운데 29명이 중국(대만인 1명과 말레이시아·미국·캐나다 화교 제외)이었다. 1·2·3차를 거진 11명이 18~20일 쇼팽 협주곡 2개 중 하나를 연주해 승부를 겨룬다. 일본 2명, 폴란드와 조지아 각 1명씩, 중국 국적자가 3명인데 미국(2명)·캐나다(1명)·말레이시아(1명) 도 다 중국계다.
본선 진출자라면 이미 평범한 재능은 아니다. 열심히 한다고 도달할 수준이 아닌, 천부적인 음악적 감수성과 그것을 표현해 낼 만한 신체조건과 운동신경을 가져야 한다. 또 혹독한 연습의 체력적·정신적 한계와 스트레스를 견뎌내려면 열정적인 음악사랑 없인 불가능하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인 피아니스트들의 존재감은 기교적 탁월함을 넘어 음악적 완성도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향후 클래식 음악계의 본격적인 중국세를 가늠하게 해준다.
심사에선 전통적으로 쇼팽 특유의 ‘섬세함’ ‘우아함’의 구현이 중시돼 왔다. 그래서 1980년 제10회 대회 때 이보 포고렐리치(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의 파격적 해석을 둘러싸고 심사위원들 입장이 심하게 갈렸던 사태는 유명하다. 마르타 아르게리히(1965년 우승)가 포고렐리치를 강력 지지하다 좌절되자 회의장을 뛰쳐나가는 등 난리 끝에 우승이 베트남의 당타이선에게 돌아갔다. 아시아인 최초이긴 했으나 모스크바에 4년째 유학 중이었고 냉전의 한복판이었음을 감안할 때 더 복잡한 요소가 작용했으리라 상상하게 된다.
베트남전쟁이 종식된 지 불과 5년여 시점의 당타이선 우승은 전화(戰火) 속에 피어난 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폴란드 일간지와 평론가들은 그를 “동양에서 온 쇼팽의 시인”이라 부르며 “기교보다 시적 감수성과 내면의 호흡으로 승부한, 전혀 새로운 해석”으로 높이 칭송했다. 소련 매체 반응은 “공산권의 자랑” “우정과 예술이 맺은 사회주의적 결실”로 요약된다. “하노이 청년 피아니스트가 모스크바에서 배운 음악으로 바르샤바의 마음을 울렸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선 민족적 자긍심의 상징이자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문화영웅’으로 자리잡았다.
당타이선 이후 20년 만의 아시아인 우승자가 1982년생 리윈디(李雲迪)였다. 2000년(제14회) 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겼다. 첫 중국인 우승자이자 대회 사상 최연소(만 18세)에 해외유학 경험 없는 토종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다. 리윈디의 존재가 중국 내 피아노 교육 시장을 열어젖히는 역할을 했다. 거의 멸절 상태였던 클래식 음악이 간신히 복원을 위해 애쓰던 와중에 한 명의 천재가 시대 변화를 앞당긴 셈이다. 중국 경제 고도성장과 맞물려 리윈디는 엄청난 국민 스타로 등극했다.
또 다른 중국 영재 출신 피아니스트에 리윈디 동갑내기 랑랑(郞朗)과 다섯살 어린 왕위자(王羽佳)가 있다. 만15세 때 미국의 명문 음악원(커티스)에 뽑혀 성장한 이들도 세계적 무대와 레코딩을 통해 일류 피아니스트 대접을 받고 있으나, 2010년대까지 자국 내 유명세는 리윈디에 미치지 못했다. ‘꽃미남 톱 아이돌’ 수준 인기를 누리던 리위디가 중국 피아노 꿈나무들 양성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다만 그 엄청난 인기가 본인에겐 독이 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십년 전 한국 공연 때 오케스트라 반주와 엇박자를 낸 것과 대응 태도가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고, 2021년 성매매 기소 건으로 결정적 추락을 겪었다.
이번 쇼팽콩쿠르 중국인들 대부분 20대이며 최종 결선 진출자엔 만16세 소녀도 있다. 지난 20여 년 중국의 피아노 교육은 크게 대중화해 대도시 곳곳에 피아노 연습실과 레슨실이 들어섰고 체계화된 등급도 갖췄다. 시간당 10위안(약 2000원)이던 연습실 사용료가 지난 10여 년간 2배 올라있으며, 본고장과의 기술 협력으로 쓸만한 자국 브랜드 피아노도 출시돼 있다. 피아노 교육의 대중화란 그 나라 중산층 출현을 의미한다. 서유럽 왕족·귀족의 궁정 음악가들의 전유물이던 피아노가 19세기 들어 중산층 자녀들의 교양이 됐고, 20세기 중반 이후 일본·한국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중국의 경우엔 국가 차원의 경쟁 의식마저 어른거린다.
가장 늦은 출발이었으나 눈부신 발전상을 자랑해 온 한국, 클래식 음악 역사가 아시아 최고이며 애호가 저변이 넓은 일본에서 우승자를 못 낸 것 모두 특이 현상으로 간주돼 왔다. 일본은 쇼팽콩쿠르를 국민적 자부심·문화브랜드로 여겨 온 폴란드 다음갈 관심을 보여 온 나라로서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고조돼 있다. 본선 연주에 제공되는 최고급 피아노 5종 가운데 2개가 일제(야마하·카와이)인 지 오래이며, 지난 대회 때 본선에선 비전공생(공학도·의학도)의 존재가 화제를 불렀다. 한국인 이혁·이효 형제는 결선 진출엔 실패했으나 외국인 스타로서 이름이 높다. 폴란드어마저 능통해 현지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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