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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17년 연속 아이슬란드가 꼽혔다. 호주 시드니에 본사를 둔 글로벌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의 연례보고서 내용을 미국 CNN방송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자세히 소개했다. 올해로 19년째 평화 순위를 발표한 IEP는 23개 지표를 토대로 사회 안전·안보 단계, 국내외 갈등 규모, 군사화 정도 등 세가지 영역에서 평화 수준을 측정해 나라별 순위를 매긴다. 1점에 가까울수록 평화로운 상태다. 이슬란드는 올해 1.095점으로 1위를 지켰다.
수백년 앙숙인 영국을 국민소득 면에서 2005년 제친 이래 이젠 2.5배 우위에 선 아일랜드(1.260점)도 전년처럼 세계평화지수(GPI) 2위를 유지했다. 대한민국은 조사 대상 163개국 가운데 1.736점으로 전년보다 두 계단 올라 41위다(북한 149위 작년과 동일). 보고서는 글로벌 평화 수준이 2014년 이후 지속 하락 중이며 작년 기준 전 세계 약 87개국의 평화 지수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국가 기반 분쟁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다인 59개이며 이에 따른 사망자도 크게 늘었다. 최신 통계인 작년 기준 경제적 손실 약 19조9700억 달러(27경1500여조 원) 역시 전 세계 총생산의 11.6%에 해당하는 심각한 수치다.
GPI 최상위권 3~5위에 뉴질랜드(1.282점)·호주(1.294점)·스위스(1.294점)인 반면 미국(2.443점)은 128위로 온두라스·방글라데시·우간다보다 순위가 낮았다. 최하위 5개국에 예멘(3.262점)·콩고민주공화국(3.292점)·수단(3.323점)이 포함됐다. 3년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3.434점)·러시아(3.441점)가 전년보다 각각 3계단·2계단씩 떨어져 162위와 163위에 놓였으며 러시아의 올해 순위는 사상 처음이다.
트위터(현 엑스) 공동창업자 에번 윌리엄스가 2012년 만든 글로벌 글쓰기·출판 플랫폼인 미디엄엔 일찍부터 IEP 평화지수에 관한 비판 글이 다수 올라왔다. “서구 중심의 편향성” “정치적 활용(낙인찍기) 도구” 측면이 주로 지적됐으나 아이슬란드 순위에 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다. 2008년부터 부동의 GPI 1위인 아이슬란드에 새삼 눈길이 쏠린다. 사회 안전과 치안, 군사적 무장 수준까지 모든 지표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다. 복지국가로 이름 높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사정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과 대조적이다.
아이슬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8만~9만 달러) 수준뿐 아니라 인구 약 40만 명의 소규모 신용사회를 꾸려 온 나라답게 범죄율이 극히 낮고 군대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이 아무리 난민·이민으로 혼란을 겪어도 인구 대비 최소한의 인도적 수용(50명), 그나마 혈연적·종교적(기독교권)으로 가까운 지역 출신을 우선하는 등 다양성보다 국가통합성을 중시해 왔다. 계절 노동자조차 이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비유럽·비기독교권 출신을 원칙적으로 막진 않지만 비율이 매우 미미하다.
아이슬란드는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유럽 최빈국의 하나였다. 어업·양목축산에 의존했으며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할 때 경제 기반이 취약하기만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미국·소련 대결 구도 아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서방 지원 덕분에 각종 인프라가 빠르게 개선된다. 냉전 절정기인 1945~1970년대 아이슬란드는 나토의 전략 요충지로서 군사·경제 지원을 꾸준히 받으면서 어업 현대화와 독점적 어업권까지 확장했다.
1980년대 이후 자유화와 함께 금융업·서비스업이 발전했고 알루미늄 제련 산업(에너지 집약형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저렴한 수력·지열 전기를 적극 활용했다. 2000년대 들어 금융 허브를 자처하며 외국 자본이 몰려 은행 급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급등을 가져왔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가 부도를 맞을 뻔했지만 은행을 정리·국유화하고 빠르게 회복해 이례적인 케이스로 남았다. 이후 금융 대신 관광·수산·에너지 산업 중심으로 재편했으며 2010년대 들어 관광산업이 폭발적 성장을 보였다(오로라·빙하, ‘왕좌의 게임’ 촬영지 등). UN 행복지수·평화지수도 늘 상위권이다.
어업·해군 강국 영국과 1958~1976년 3차례 충돌하면서 아이슬란드 자국 연안 어업 수역을 4해리→12해리→50해리→200해리로 점차 확장한 것 또한 국제정치사에서 회자된다. 아이슬란드가 나토 탈퇴를 언급하자 미국이 중재에 나서 결국 영국 양보를 이끌어냈다. 북대서양 대구 어장을 두고 군함까지 동원해 ‘대구 전쟁’으로 불릴 정도다. 이 고비를 넘기며 GDP 대비 어업 비중 20~25%(수출 전체의 60~80%가 수산물)이던 아이슬란드는 국가 재정 안정화와 사회복지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200해리 어업권 확보가 ‘지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세계 정세 속의 당연한 흐름인지에 대해선 역사학계 해석이 다소 엇갈린다. 하지만 해양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 1982년 UN해양법협약(UNCLOS)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기 훨씬 전 영국을 상대로 어업권을 챙긴 것은 외교적 승리라 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로선 엄청난 정치적 모험이었으나 비범한 전략적 판단으로 평가된다.
아이슬란드는 9세기 후반 노르웨이 사람에게 발견될 당시 ‘얼음 땅’(현지어로 이슬란드)으로 명명됐으나 이름과 현실이 다르다. 실은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며 북대서양 난류 덕분에 그린란드보다 온화한 기후를 가졌기 때문이다. 10세기 후반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돼 서쪽으로 항해하던 바이킹이 도착해 정착지를 건설한 게 오늘날의 그린란드다. 빙설 투성이의 황량한 땅이었지만 일부러 ‘녹색 땅’이라는 역설적 이름을 붙였다 해서 아이슬란드와 자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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