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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4일 평양 개선문광장에서 열린 ‘조국해방(광복) 80돌 경축대회’에서 집권 후 처음으로 광복절 기념 연설에 나서 북·러 결속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서방 진영을 겨냥한 비판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담았다.
15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경축행사에는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장을 비롯해 러시아 국가회의 대표단, 문화성 대표단,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 등이 참석했다. 볼로딘 의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축전을 대독했고, 공연의 마지막 무대는 러시아 국가(國歌)가 장식했다. 김 위원장이 대회장에 도착하자 축포와 풍선이 하늘을 수놓았고, 곳곳에서 “만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제국주의 타파를 언급하며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은 조선 인민에게 생명과도 같은 자주적 존엄을 되찾은 위대한 승리의 날”이라며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인민의 굳건한 독립 정신을 꺾을 수 없었고, 국권을 되찾기 위한 애국적 반일 투쟁은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인민의 해방절을 두 나라의 공동 명절로 경축하며, 두터운 믿음과 우의를 함께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방북한 바체슬라프 볼로딘 의장, 그리고 친근한 러시아 전우와 형제적 인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선의 해방을 위한 결전의 기록에는 세계 반파쇼 전쟁의 최전선에서 영웅적으로 싸운 붉은 군대 장병들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며 “우리 인민은 러시아 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보여준 숭고한 국제주의적 위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조·로(북·러) 친선관계는 역사에 전무한 동맹관계로 발전하고 있으며, 신나치즘 부활을 저지하고 주권·안전·국제 정의를 수호하는 공동 투쟁 속에서 공고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과 러시아는 언제나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었으며, 패권을 반대하고 공평과 정의를 요구하는 인류의 지향을 견결히 대변해왔다”며 “숭고한 이념과 진정한 우의로 맺어진 조·로 단결의 힘은 무궁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날 연설에서 미국·한국에 대한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항일투쟁 상징 공간 참배·대규모 경축공연
북·러 결속… 한·미·일 군사 협력 시험대 올려
김 위원장은 경축식 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항일 무장투쟁 공신들이 묻힌 대성산 혁명열사릉에서 오진우·김책 등 10인의 반신상에 헌화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평양 개선문광장에서 대규모 경축공연이 열려 항일 혁명가요와 애국주의 주제곡이 울려 퍼졌으며, 항일 투쟁 유가족과 사회주의 공로자, 학생·시민 등 대규모 인원이 참석해 내부 결속을 다졌다.
앞서 지난해 6월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에는 ‘상호 방위 조항’이 포함돼(일방이 공격받을 경우 상호 원조) 같은 해 12월 공식 발효됐다. 이를 통해 북·러 관계는 사실상 준(準)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러가 ‘탄약·미사일 ↔ 기술·연료’라는 상호 보완적 전시 거래 위에 상호방위 조항을 얹으면서, 한·미·일의 다층 방어, 제재 집행, 공급망 안보를 동시에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김 위원장은 14일 볼로딘 의장을 별도로 접견했다. 볼로딘 의장은 ‘조국해방의 날’ 80주년을 맞아 북한 최고인민회의 초청으로 방북했으며,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이 북·러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고 양국 인민의 친밀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틀 전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양국 간 다방면 협력을 확대하고 지도부 간 소통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와 외국 정상 간 통화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5일 예정된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했다.
볼로딘 의장은 과거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 탈환에 기여한 점을 언급하며 “러시아는 그 영웅적 위훈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양국 복리와 친선 발전,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 건설을 위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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