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의료 개혁보다 군의관 수급이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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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10 00:02:30

“군의관은 각 부대의 ‘의료 처치 기계’다. 평시에도 진료실에 병사들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이 패턴에 최적화된 의사, 말 그대로 군인 의사가 돼 가는 과정이 군의관의 일상이다.”

군의관 출신 전문의는 최근 의대 증원 문제로 비롯된 의·정 갈등 장기화로 군의관의 상급종합병원 투입이 이루어지자 군 내부 의료 공백을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진료와 예방 활동뿐 아니라 환자 보호와 신병 면담까지 하는 군의관은 군 내부에서는 ‘1인 군 복지부’로도 통한다. 현재 군에서는 의원 기능을 대대와 연대급 의무대가 담당하고 사단급에서는 2차 병원급 진료 직무를 수행한다. 군 병원 및 수도병원은 군 내에서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하는 1~3차 군 의료 체계를 갖추고 있다. 보통 전문의들이 입대하면 대위나 중위급으로 군의장교급 특수 참모 역할을 수행한다.

전방부대에서 야외훈련을 따라다니며 응급 상황에 처한 군인을 살리는 역할도 군의관 몫이다. 군에서 빠져서도 안 되고 빠질 수도 없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민간 병원에 군의관을 장기간 투입하는 것은 군 전체에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달 국군병원과 야전부대에서 120명의 군의관을 차출하여 민간병원에 투입했다. 전체 군의관 2400여 명 중 5%에 해당한다. 현재는 응급의료 처치를 위한 권역외상센터에 일정 기간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 중으로 군의관 차출이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의관에 대해 ‘군 내부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을 범위 내에서 인력을 차출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인력 차출로 빚어진 공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취재 중에 만난 의료진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를 털어놓기도 했다. 2차종합병원의 한 전문의는 “병사가 운동 중 다쳤으나 군의관도 보지 못한 채 통증을 나흘 넘게 홀로 참아내다 찾아왔다”며 “조금만 늦게 처치를 받았어도 영구 장애로 고생할 뻔했다”고 알려왔다. 평시에도 군의관 부족과 의무 지원 동원 시 군의관 의료 공백이 군 내부에서도 비일비재하여 진료 일과가 지켜지지 않기 일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 ‘의료 공백’ 사태로 같은 문제가 더욱 부각된 셈이다.

실제 ‘학교 양호실보다 못한 군 의무실’이라는 비판에 우리 군은 2020년 ‘군 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민간 병원 이용 정차를 간소화하고 권역별·질환별 전문병원을 지정했다. 연대·대대 의무실 군의관이 아닌 전문과별 의료진과 검사 장비를 갖춘 사단 의무대도 꾸렸다. 그럼에도 응급 대기시간이 길어 이른바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적시 처치를 받지 못해 위·중증 상해를 입는 사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간호장교와 보조 의료진 부족으로 수도병원을 제외하고 군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수술 수행도 어렵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군 의료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군의관’의 ‘만성적 부족’ 문제다.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 데다 의대생 현역 입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군의관 고갈’ 이야기까지 나온다. 군의관 복무기간은 기본 36개월 근무에 추가 훈련기간 2개월을 더해 총 38개월이다. 이에 반해 현역병의 경우엔 육군 18개월·해군 20개월·공군 22개월이면 복무 기간이 완료된다. 이 점 때문에 의대생들이 군의관보다 일반 현역병으로 지원하는 게 추세가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의대생 사병 입대 금지와 의대 여학생의 국방 의무화라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1일 의료 개혁을 주제로 한 대국민담화에서 우리 군 병력 48만 명 중 군 의료체계 내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기 군의관은 전체 2500여 명 중 130명밖에 되지 않으며, 이마저도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밝혔다. 실제 미국은 ‘국방의과대학’ 일본은 ‘방위의과대학’을 운영해 장기 복무 군의관 수요를 메꿔 왔으나 우리 군은 만성적 의사 부족 문제로 이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문제 제기에 다름 아니다.

국회도 ‘국군의무사관학교 설치법안’을 꾸준히 발의해 왔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기본적 입법 발의마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발표 및 증원 배정 완료가 아쉽다. 이번 의료공백의 중심에는 응급의료 환자에게 문을 연 국군 병원과 이들을 위해 투입된 군의관들의 헌신이 있었다. 장기 군의관 양성은 국군 장병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 의료계를 위한 선결 과제가 될 것이다.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