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전가의 보도’ 꺼내는 게임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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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26 00:02:30

우리나라 기업들이 규제 논의가 있을 때마다 꺼내는 카드가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이고 두 번째는 산업 발전 저해다. 규제 때문에 산업 발전이 늦어질 수 있고 해외 기업의 경우 규제하기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규제의 부작용이 있음에도 규제를 하는 이유는 규제로 얻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만큼 잘못된 게 있으니 규제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들은 맞는 말임에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잘못하고 혼나는 게 억울하다고 하는 말과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랑 싸우고 나서 “옆 반에 누구는 더 세게 때렸는데 안 혼났는데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공정한 학교생활을 위해 너도 혼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주장을 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불리한 부분은 최대한 숨기는 것이 정석이라고는 하지만 뻔뻔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 확률형 아이템 규제도 마찬가지다. 확률형 아이템 법안이 시행되고 나서 외국 게임사가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사례가 발견되고 특히 중국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규제하는 것이 맞고 규제를 피해가는 외국 기업에게서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맞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게임사들이 저질러 놓은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이 나온 배경은 소비자가 확률형 아이템에 사용하는 비용은 커지는데 정작 판매하는 상품의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태까지 포착된 것에 있다.

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데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감추고 자율 규제를 통해 공개한다고 해 놓고는 굳이 확률표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서 찾기 어렵게 하는 등 갖은 꼼수를 부리니까 결국 법으로 잡아 달라는 요청이 나오고 법안이 시행됐다.

그러니까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게임사의 의견이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정당한 요청이나 업계의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산업 역군의 소신 발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더 기분이 나쁜 것은 게임사들이 역차별을 말하고 산업 발전 저해를 말하면서 이러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이용자들의 민심 관리에 누구보다 신경 썼을 게임사들이 이 정도도 예측 못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산업 발전과 역차별을 논하는 것은 그동안 규제가 없을 때는 편하게 해 먹었는데 규제 때문에 불편해졌으니 없애자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구질구질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꺼내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니까 확률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외국 기업들은 확실하게 제재했으면 좋겠고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 대책도 충분히 마련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혹시라도 여기서 더 나아가 기껏 마련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을 없애거나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이러한 논거를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게임사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는 이용자들이 다시 들고일어나는 걸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양준규 기자 jgy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