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환자가 무섭다” 붕괴하는 의료계에 침묵하는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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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21 00:02:30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주 52시간제에서 벗어난 전공의 80시간 법으로 병원에서 먹고살며 환자를 돌봤는데, 돈만 아는 파렴치한으로 몰려 버렸다. 환자가 ‘무서워서’ 더는 대면 할 수가 없다. 뒤돌아보는 순간 나를 이기주의 악마로 몰아갈 것 같다”

집단행동에 나서 병원을 떠난 한 전공의는 이같이 밝히며 ‘전공의 집단 사직’의 배경에 놓인 건 ‘의대 증원수를 고집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보다 ‘환자에 대한 배신감과 공포 심리’가 먼저라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전원 사직서를 낸 ‘빅5’ 병원 전공의들을 필두로 한 전공의 집단 사직 행동이 한 달째를 맞아간다. 이들은 학교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이탈 사태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텅 빈 병원을 지켰던 마지노선 의대 교수들마저 25일 사퇴를 못 박은 후 병원을 떠나겠다고 한다. 정부는 ‘의료개혁은 무를 수 없는 사명’이라며 20일 오후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을 위한 전국 의대별 정원 배분을 예상보다 수 주 앞당겨 하겠다고 했다.

20일부터 22일까지 이루어지는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후보 5명 중 4명은 ‘의사 파업’을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이 ‘환자를 버렸으며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혔다’는 입장을 끊임없이 내비치며, 이들에 대한 면허정지 등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이에 대응해 의사들은 변호인단을 꾸리고 복지부 의대 증원 정책 담당자들을 고발하고 있다. 경영난에 봉착한 병원들은 전공의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그 위중함에 있어 2000년 의료파업 사태나 2020년 코로나19 시국 당시 의사파업과 다르다. ‘위·중증, 응급 의료체계가 마비됐다’는 것으로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들이 볼모로 잡혔다. 또한 ‘환자 생명을 저버렸다’는 오명과 비판 속에서도 연락처까지 바꿔 가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 마음은 ‘정부와 환자에 대한 배신감’과 이에 따른 공허함·좌절감·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다.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의료봉사 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희생할 것을 강요당했다는 이들. 이것은 2020년 의협 측이 전공의를 배제하고 의·정협의체를 꾸렸을 당시부터 예측된 시나리오였다.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불도저처럼 몰아붙이는 정부에 대해 분노를 넘어 모든 걸 상실한 마음이라 한다.

이에 더해 방망이를 잡고 자신들에게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일본 자폭 특공대 가미카제(カミカゼ)의 바이탈뽕식 정신을 강요하는 폭력적 목소리와 태도에 의료계 전체가 정부와 환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신뢰가 깨진 관계는 단절과 이별이 불가피하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바이탈뽕’ 정신으로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의무감에 젖어 젊음을 바친 결과가 ‘의대 증원 2000명’과 거짓으로 가득 찬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였다. 그들은 지금도 “돈 문제가 아니다. 돈은 맨 나중에 따라오는 것이다. 24시간·365일 병원을 지키고 환자 곁을 떠나지 않으며 의료 현장을 지켰던 마음을 ‘의새’ ‘합법적 살인마’ 등의 시선으로 농락한 게 우리가 떠난 진짜 이유”라고 외치고 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과 수가 정상화 정책에 대해서도 한 올의 신뢰조차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수과 재정 투입은 국회에서 예산 책정이 부결되면 시행되지 않을 것이고, 수가를 정상화 해 준다고 해도 원가보전 이하의 수준일 것이며 전공의 처우를 개선해 준다 해 봤자 생사가 오가는 의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을 공염불에 불과하다. 앞에서는 약속하고 넘어가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또다시 뒤집고, 의대 증원 문제를 포퓰리스트처럼 들고 나와 멱살을 잡는 행태에 더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전문의는 “행정명령 발동하고 면허정지 ‘협박’하고 정부와 언론은 의사를 악마 화하는데 온 국민이 선동되어 돈만 아는 버러지 취급을 한다”고 했다. 택배 상·하차를 해도 현재의 상실감 속에서 의사 노릇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자괴적 목소리가 절망만 남은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극도의 우울증을 겪는 이들은 극한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손 한 번 까닥하기가 어렵고 물 한모금 삼키기가 힘들다….” 요지부동으로 침묵을 지키며 한마디도 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