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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도시의 심장부에서 밤늦도록 법률 문서를 붙잡고 씨름하던 변호사와 어소시에이트들의 한숨이, 기술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타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베링랩(Bering Lab)이 있다. 베링랩은 법률 번역이라는 좁고 특수한 영역을 정교한 AI 기술로 재편하며, ‘법률 번역도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내 최초로 입증했다. 그들의 여정은 법률 시장의 비효율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 글로벌 무대에서 대담한 성취를 쌓아 올리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2012년, 김앤장·화우·율촌을 거친 미국 변호사 문성현 공동대표는 서울 로펌에서 매일 같은 풍경을 보았다. 각종 계약서와 진술서, 증명서를 번역하느라 고급 인력 수십 명이 밤을 지새우는 장면이었다. 복잡한 법률 용어,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 사소한 해석 차이가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세계에서 번역은 필수였지만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었다. 그는 “기계 번역은 법률 번역을 대체할 수 없다”는 업계의 불문율을 ‘기술적 가능성’으로 뒤집어 보기로 결심했다.
2018년, 문 대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재윤 공동대표와 손잡고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법률 번역 AI’를 만들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전략은 명확했다. 범용 언어 모델이 아닌, 법률 문서만 학습한 ‘도메인 특화 모델’을 만드는 것. 변호사가 문서를 읽는 방식 그대로 문맥의 결을 파악하는 번역기를 구현하겠다는 시도였다. 2년에 걸친 개발 끝에 이들은 2020년 WMT 세계 기계번역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법률 번역은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정면으로 무너뜨렸다.
문 대표는 스카이데일리에 “베링랩은 법률, 특허, 방산, 임상 등 여러 전문 도메인에 특화된 AI 통번역기 및 전문 인력 감수 서비스를 보안에 최적화된 환경에서 제공하고 있다”며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SBVA)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싱가포르 및 홍콩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아시아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링랩의 성장은 이후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네이버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2023년에는 베링AI+를 출시해 지원 언어를 7개로 넓혔다. 연간 번역량은 1000만 단어를 넘어섰다. 특히 1,500개 스타트업이 참여한 화웨이 클라우드 스타트업 대회 대상, 싱가포르 SLINGSHOT 결승 준우승은 그들의 기술력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음을 입증한 성과였다. 현재 베링랩은 전 세계 4개 오피스, 25명의 정규직, 그리고 400명 이상의 변호사·번역가 네트워크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베링랩 관계자는 본지에 “미국 소송에 한국 기업이 연루되면 수만 장, 많게는 수백만 장의 한국어 문서를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미국 변호사가 직접 검토하면 비용이 최소 세 배까지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베링랩처럼 한국어 특화 AI를 사용하면 미국 변호사들이 영어 번역본만으로 바로 검토할 수 있다. 실제로 비용이 60~70% 가까이 절감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간 절감 효과에 대해 “번역 자체는 몇 시간 안에 끝나지만, 증거 검토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체 소송 기간에서 차지하는 시간 비중은 크게 줄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링랩의 기술 경쟁력에 대해서는 “개발 과정에 미국·한국 변호사들이 참여해 한국 법률 문장의 미묘한 뉘앙스를 영어로 정확히 옮기는 데 특화돼 있다”며 “특히 미국 소송 시장에서 반응이 좋다. 법률 번역의 안정성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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