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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떨렸다. 오랜만에 연락 해온 그는 몇 해 전 인천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전세사기의 피해자라 했다. 전 재산을 잃고 방황하다 이제야 연락을 하게 됐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단체 소송을 이어 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막막하다는 말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들으니 기자의 마음도 철렁 내려앉았다.
전세사기 문제는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보증금을 잃고 길거리에 내몰린 피해자들의 절규가 단순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금융권에서도 대책을 내놨지만 이미 피해를 본 이들을 근본적으로 구제할 수는 없다. 이런 가운데 민간 보험사들이 ‘전세사기 대응보험’을 내놓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 과연 이들 상품이 피해자의 든든한 방패가 될 수 있을까.
롯데손해보험은 지난해 전세사기 피해보장 상품을 출시하며 업계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성격이었지만 보장 내용이 피해 발생 이후의 보상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사후적 대책’에 머문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세입자들에겐 대안이 됐지만 계약 단계에서의 사기 피해 자체를 예방하지는 못했다.
2주 전 출시된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의 ‘직거래 전월세보험’은 예방과 보상을 결합해 전세시장 안전망의 큰 축을 제시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직거래 계약도 가입 대상이 되며, 계약 직후 이사 전부터 종료 시점까지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폭넓게 담았다. 가짜 집주인, 무권대리인 계약, 동일주택 이중계약, 선순위 권리설정, 이전 세입자의 점유 문제 등 대부분의 전세사기 유형이 보장 대상이다. 피해 발생 시 보증금 전액 보상이 가능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보험료 구조도 합리적이다. 계약시 한 번 납부하면 최대 3년간 보장이 유지되며 최소 1000만 원에서 최대 5억 원까지 보호된다. 특히 소액 전세나 월세 계약이 많은 직거래 시장에서 보험료가 중개수수료보다 저렴하다는 점은 계약의 실효성을 높인다. 여기에 ‘우리집 리포트’ 같은 사전 위험점검 서비스, 등기부등본 변동 알림 제공은 단순 보상을 넘어 예방 기능까지 갖췄다.
그렇다고 이 보험이 만능은 아니다. 보상 과정이 얼마나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심사 절차가 길어지거나 예외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보험은 ‘사후적 장치’라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민간보험의 등장은 분명 의미있는 진전이다. 전세사기 문제가 개인의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안전망이라는 더 큰 틀 속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출발점일 뿐이다. 보험이 마지막 구제책이 아니라 사기 행위 자체가 줄어들게 하는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임대인 신원 검증 강화, 등기부등본 실시간 확인, 공공 차원의 거래 모니터링 확대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단순히 돈만 잃는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신뢰가 붕괴되며 사회적 불안까지 겪는다. 이제는 “사기를 당하면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다”가 아니라 “애초에 사기가 발생할 일이 없다”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험은 중요한 보조 장치가 될 수 있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피해자 구제와 예방 사이, 우리 사회가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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