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지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나 어릴 때 누가 누가 잘하나,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 나갔었어. 두 손 모으고 입 크게 벌려 노래했지. 곧잘 했어. 입상도 하고. 그래서 크면 가수가 돼야지 했거든. 고등학교 올라가선 반드시 대학가요제 나가겠다 마음먹었어. 그런데… 참, 금화는 절대음감이 뭔지 알아?”
뜬금없는 질문이었고 모르는 말이었다. 절대음감이 뭔데요? 천진하게 묻는 희숙이 귀여운지 권기호는 강아지 머리 쓰다듬듯 정수리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절대음감이란 게 뭐냐면, 음을 들었을 때 그 음이 어떤 음을 내는지 다른 음을 듣지 않고도 알아내는 능력을 말해. 고3 때 말야, 같은 반에 절대음감을 가진 놈이 있었거든. 그놈은 피아노 88개 건반 중에 어느 것을 눌러도 그게 도인지, 파인지, 라인지 아는 거야. 샵 음까지도. 심지어 공중전화 걸다 끊어진 발신음 알지? 뚜뚜뚜뚜 하는. 그 음이 ‘라’인 것도 알더라고. 그냥 들으면 아는 거야. 내가 그놈 정도는 돼야 가수 하지 싶어서 가수 꿈을 접었어.”
희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만 가수 하는 건 아니잖아요? 조용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김완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대학가요제 나오는 학생 중에 절대음감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있다고.” 권지호는 희숙의 말에 수긍했다.
“그건 그렇지. 근데 아버지가 우리 집에 딴따라는 절대 안 키운다고 엄명을 내리셨어. 아버지가 무서웠거든. 아버지는 그런 거 이해 못 하셔. 우등상을 타 와도 칭찬 안 했고 모형 만들기 대회 나가서 대상 받아도 그딴 거 잘해서 뭐 하냐고 무시하셨거든. 우등상 받아도 칭찬은 안 하신 분이 성적 떨어지면 회초리로 무지 때리셨어. 아버지가 번 돈으로 먹고 자고 하면서 공부 못하면 맞아야 한다고. 나는 아버지한테 잘 보이려고, 밥 잘 먹으려고 공부했지, 진짜 공부가 좋아서 한 적은 없었다니까. 어쩌면 가수가 되겠다 한 건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었을 거야. 남들은 우리가 큰 집에 사니까 자식들한테 돈 많이 주고 매일 맛있는 것만 먹는 줄 아는데, 아버지는 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월사금 내 주고 옷 사 입혀 주면 됐지, 용돈이 어째서 필요한지 이해 못 하셨다니까. 하다못해 영어사전 하나를 사도 사전 값 외엔 한 푼도 안 주셨어. 삥도 못 해. 영수증 갖다 드려야 했거든. 그래서 아버지는 내 친부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적도 있었거든. 그런 아버지인데 절대음감도 안 가진 놈이 가수 한다고 하면 허락했겠어? 쫓겨났겠지. 내가 어렸을 때는 엄청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거든. 심지어 서울대도 못 가는 놈이라고 호되게 꾸짖어서 그럼 나는 죽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했었는데 뭘. 사랑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 집이 너무 가난했어. 아버지가 기껏 공부시켜 놨더니 고작 가난한 집 딸이냐고 또 뭐라시는 거야. 헤어졌지. 아버지가 무서워서 포기하고 산 게 많아. 근데 시간이 지나고 또 살아 보니까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게 많더라고.”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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