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여성들, 탈레반 도덕법에 저항해 “소리 높여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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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장소에서 몸 전체 가릴 것… 노래·시 낭송 불가
국·내외 SNS 통해 반발… 국제사회 지지·연대 표명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30 04:40:06

▲ 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검정 베일을 뒤집어쓰고 노래하는 영상이 SNS에 올라 왔다. 탈레반 정부의 자칭 도덕법(악덕·미덕에 관한 법)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다. 21일 공포된 이른바 도덕법 35개조에 따르면 여성은 외출 시 전신을 가려야 하며 공개 장소에서 소리내선 안 된다. 여기엔 노래나 시낭송도 포함된다. 연합뉴스

▲ 타이바 술라이마니라는 젊은 여성이 히잡의 일종인 자신의 베일을 '조절'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의 도덕법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탈레반에게 NO'라는 해시태그도 붙어 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실질적 통치세력인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탈레반이 최근 자칭 ‘도덕법’ 발표 후 국내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귀추가 주목된다. 아프간 여성들의 SNS 시위를 AFP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1일 나온 35개 조항의 도덕법에 따르면 여성은 외출 시 신체를 완전히 가려야 하며 공공장소에선 목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노래 부르기나 시 낭송 역시 금지다.

이에 아프간 여성들이 국내외에서 “내 목소리는 금지된 게 아니다” “탈레반 NO”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노래하는 자기 영상을 SNS에 올리고 있다. 아프간 국내에서 촬영된 듯한 한 영상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 베일을 뒤집어쓴 여성이 노래한다. “당신들은 내 목소리를 잠재웠다. 여성이라는 죄로 나를 집에 가두었다” 등 항의의 노랫말이다.

또 젊은 여성 타이바 술라이마니가 거울 앞에서 머리에 쓴 베일을 매만지며 “여성의 목소리는 숨겨야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노래한다. “난 자유의 찬가를 부르겠다” 문구가 보이는 가운데 베일의 수위 조절을 하는 듯한 모습에서 히잡의 ‘올바른’ 착용 강요에 대한 풍자도 읽힌다. 2022년 이란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가 히잡을 스카프처럼 멋스럽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체포된 후 의문사한 사건을 암시한 퍼포먼스일 수 있다.

현재 폴란드 거주의 전직 경찰 잘라 자자이가 아프가니스탄의 유명 여가수 아리아나 사예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아프간 여성에 대한 억압은 용납 못 할 일”이라며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는 우리 목소리다.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탈레반 집권 후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한 아프간 태권도 챔피언 마르지에 하미디는 SNS에서 ‘우리를 존재하게 하라’ 문구를 퍼트려 달라며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가 돼 줄 것을 촉구했다.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미국에 망명 중인 이란 언론인이자 여성 운동가인 마시 알리네자드는 “아프간 자매들”과 연대한다며 노래 부르는 영상을 올렸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외치고 21세기 성차별에 맞서 싸우자”는 내용이다.

2021년 8월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1975년 4월 베트남 사이공 함락 때 못지 않게 무질서한 아수라장이었다. 20년간 7800억 달러(약 1000조 원)를 쏟아부었으며 6~7만의 아프간군과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국 군인들 3500명 이상이 희생됐다. 철수 마지막 날 카불 공항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또 목숨을 잃었고 그간 서방에 협력한 아프간 사람들도 황망히 탈출해야만 했다.

며칠 전 26일 아프간 미군 철수 3주년을 맞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정부의 외교 실패 및 무능”을 공격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스치스러운 대목”이라고 질타했다. 아프간의 친서방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미군 철수 당일 무너졌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지난 3년간 미덕 촉진·악덕 방지부를 설립해 각종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해석하며 여성교육 제한 등 여러 비공식적 조치를 이미 시행 중이다. 그 일련의 규제들이 이번에 도덕법으로 명문화한 셈이다. 심각한 여성인권 탄압이라는 서방의 시각을 탈레반 측에선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제대로 이해 못한 채 비난하는 오만”이라고 일축했다.

AFP가 보도한 함둘라 피트라트 탈레반 정부 부대변인의 음성 메시지엔 “이 규칙(도덕법)을 적용할 때 물리력이나 억압이 동원되진 않을 것”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며 그들을 안내하면서 시행할 것”이라고 돼 있지만 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저항의 물결이 어디까지 갈지, 어떤 사태를 유발할지 미지수다.

물비 압둘 가파르 푸르크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은 “이 이슬람 율법이 미덕 증진과 악덕 제거에 크게 도움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총 35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엔 일상생활 속 대중교통 이용, 각종 축하행사 시 음악·면도 상태 등과 관련해 금지되거나 장려할 만한 행위 내지 태도들이 열거돼 있다. 어길 경우 체포하는 등 각종 처벌을 받게 된다.

도덕법 제13조가 여성 관련 내용이다.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항상 몸을 가려야 하며 특히 남성이 유혹 당하지 않도록 반드시 얼굴을 가려야 한다. 얇은 옷, 짧거나 몸에 달라붙는 옷이어선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노래나 낭송, 큰 소리의 책낭독도 허용되지 않는다. 여성의 음성 자체가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종의 ‘남녀칠세부동석’ 또한 매우 철저하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 외의 이성 간이면 서로 쳐다보거나 함께 있어선 안 된다. 여성이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며 단신 여행이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슬람 세계에선 여성보호 명분을 내세운다. 가족·친족 남성이 동행하지 않을 경우 여성을 주인 없는 물건처럼 여기기에 대단히 위험한 게 사실이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