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바람까마귀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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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28 00:02:40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는 ‘바람까마귀’가 미어캣과 같은 공간에 산다. 검은 깃털에 눈이 빨간 이 새는 매와 같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미어캣에게 울음소리로 알려 준다. 미어캣으로선 자신들의 목숨줄을 챙겨 주는 고마운 친구인 셈이다. 하지만 이 새는 미어캣이 맛있어 보이는 것을 먹고 있으면 미어캣 경고음과 똑같은 소리를 낸다. 놀란 미어캣들이 먹이를 내팽개치고 땅속으로 달아나면 유유히 날아가 먹이를 낚아챈다. 바람까마귀는 50가지가 넘는 경고음 레퍼토리를 가지고 미어캣들을 농락한다.

인간사에서도 대중을 상대로 특정 이념이나 사고방식을 홍보하거나 설득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이런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문제는 무논리가 동반되다 보니 논리적 주장은 실종되고 선전선동만 난무한다는 점이다. 내용이 상식적이거나 사실에 입각한 것도 아니다. 또 자신을 띄우고 상대방을 폄훼하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거짓말이 섞이게 된다.

역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프로파간다 전문가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요제프 괴벨스’다. 그는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당대의 영웅으로 미화하고 포장했던 인물이다. 괴벨스는 신문과 라디오·영화 등 매체를 이용하거나 웅변이나 집회 등 온갖 방법으로 나치즘의 프로파간다 활동을 했다. 그는 거짓과 날조된 사실을 근거로 내세우며 독일 국민을 선동해 나치당의 세를 불려 나갔다. 결국 독일 국민 대부분을 반유대 나치즘의 광신도로 몰고 갔다.

악질적인 프로파간다는 21세기를 맞은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24일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다. 1년 전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은 당장이라도 온 국민이 원전 오염처리수 서너 바가지씩은 강제로 마셔야 될 것처럼 떠들어댔다. 소금은 물론 태평양과 국내 연안에서 잡히는 생선도 방사능에 오염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식으로 불안감도 키웠다.

일본의 오염처리수 첫 방류 이후 정부는 올해 8월19일까지 총 4만9633건의 방사능 검사를 했다. 이 중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능이 검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해양수산부도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이후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는 수산물과 천일염에 대해 실시한 3만4000여 건의 방사능 검사를 진행했지만 모두 적합 수준을 보였다. 결국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의 농간으로 국민 혈세 1조6000억 원을 허공에 날린 꼴이 됐다. 국민을 더욱 열받게 하는 것은 이젠 그 오염처리수가 5∼10년 뒤 우리 바다에 도착할 것이라며 또다시 우기고 있는 그들의 낯짝 두꺼운 태도다.

오염수 괴담처럼 일부 정치권과 특정 집단의 농간에 온 국민이 농락당한 경우는 여럿 있다. 2003년에는 ‘천성산 도롱뇽 소송’이 있었다. 환경단체들은 천성산 구간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한 승려는 무기한 단식투쟁까지 벌였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사회적 비용만 수조 원에 달했지만 도롱뇽은 여전히 잘살고 있다. 2008년 광우병 파동도 마찬가지다. 인간광우병이 발생한 사례가 역사상 단 한 건도 없었지만 일부에선 허위·왜곡된 괴담을 퍼뜨렸다. 사드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참외를 썩게 한다는 괴담도 허위사실로 판명났다.

최근에는 ‘동서울변전소 괴담’이 스멀스멀 선전선동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은 기존 부지에 있던 철탑을 실내 건물로 옮기고 남는 땅에 500킬로볼트(KV)급 직류송전 변환 설비를 새로 짓는 것이 핵심이다. 새 설비는 울진 원전에서 생산돼 수도권으로 들어오는 전기의 도착지 역할을 한다. 하남시는 전자파가 우려된다며 해당 사업에 ‘불허’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변전소와 가장 가까운 아파트를 기준으로 해도 편의점 냉장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보다 적은 전자파가 나온다고 한다. 그나마 소량의 전자파도 변전소 철탑을 실내 건물로 옮기면서 60%가량 줄어든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괴담을 퍼뜨리거나 여론 선동을 하는 세력은 처음에는 국민 앞에 명확하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들은 마구잡이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온갖 ‘썰’을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 퍼뜨린다. 이후에 사실이 아닌 것이 드러나면 슬그머니 발을 빼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중에는 누가 처음 괴담을 퍼뜨렸고 주장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광우병 사태 때 “청산가리를 먹겠다”던 여배우는 슬쩍 개명까지 했다. 결국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괴담꾼들은 바람까마귀처럼 능수능란한 거짓 경보음으로 국민을 바보로 만든다. 거기엔 자신이 국민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이며 어리석은 국민이 쉽게 넘어갈 것이란 ‘선민의식’도 깔려 있다. 이들에게 더 이상 당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진실이 무엇인지부터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허위 괴담 생산자와 유포자들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잘못한 게 없다느니, 허위인 줄 몰랐다느니 둘러댄다면 선거를 통해 엄하게 심판하면 될 일이다.

“국가의 일에 무관심한 대가는 사악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란 플라톤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