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학 인재들 해외로 빠져나가면 미래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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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인재 연구 자유롭고 지원 두둑한 미·유럽행
재정 지원·연구평가 제도의 기준 합리화 등 시급
R&D 투자 비율 세계 2위지만 연구 성과는 저조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27 00:02:01

지금은 ‘팍스테크니카(paxtechnica)’ 시대다. 과학기술을 지닌 나라가 패권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외국 정상이나 지도자들이 해외를 방문할 때, 방문국 정부보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먼저 찾는 일이 목격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다는 방증이다.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강력한 기술보호주의에 돌입했고, 첨단기술의 우위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우수한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막강한 자본력과 대학 경쟁력을 확보한 ‘원 픽’ 미국이 세계의 우수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도 무역 불균형 개선뿐만 아니라 4차산업혁명에 대비한 기술 및 인재 패권 전쟁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수한 젊은 과학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 ‘한성과학상’ 등을 수상하며 화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였던 최태림 교수는 서울대에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재료공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최 교수의 이직 이유는 우리 과학계를 향한 아픈 충고에 다름 아니다. 그는 “보다 좋은 연구 환경을 찾아 떠났다”며 한국은 교수들이 연구비를 따기 위해 제안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연구비에서 지출해야 할 간접비도 많아 정작 연구에 쓸 돈은 제한적이기에 대학원생들의 처우를 개선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ETH는 매년 일정한 연구비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따로 제안서를 쓸 필요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고, 대학원생이나 박사후연구원 급여도 대학에서 따로 지급하는데 그 수준이 한국 박사후연구원보다 약 3.5배 높다 보니 대학 내 교수와 연구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다 좋은 연구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과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 교수 외에 응용물리학계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인 박혜윤 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도 미국 미네소타대로 적을 옮겼고, 허준이 교수에 이어 ‘필즈상’ 후보로 거론되던 오성진 전 고등과학원 교수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로 옮겼다.

동족상잔의 전쟁 폐허를 딛고 자원 빈국인 한국이 쓴 경이로운 압축 성장 신화는 과학 기술력이 있어 가능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50년간 한국의 기업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중은 평균 20%로 미국 11%·일본 17%·영국 11%·독일 12% 등 주요 7개국(G7)을 앞질렀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과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과학기술과 산업 경제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답은 ‘투 트랙’ 전략이다. 기존 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선도형 연구개발(R&D)을 추동할 새로운 트랙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 트랙은 창의성·도전성·원초성·자율성·개방성 중심으로 시행착오나 실패가 학습 기회가 되는 생태계를 의미한다.

수십 년 현장 기초과학 연구자에게 재정적 지원에 못지않게 절실한 것은 연구평가 제도의 기준 합리화와 지원 절차 개선 등 연구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자율적 관리다. 극소수의 일탈을 기준으로 온갖 규정을 강화하고 추가 행정규제로 묶는 것은 R&D 성과를 낮추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는 최근 각 국가의 R&D 영향력과 경쟁력을 분석한 ‘네이처 인덱스’에서 한국이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5.2%(2022년 기준)로 세계 2위지만, 연구 성과에서는 낮은 순위(8위)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규제가 심해 자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충고를 과학기술 발전의 ‘약’으로 삼아야겠다.

스카이데일리 skyedail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