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잊혀진 영웅’ 6·25 참전용사를 기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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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02 20:21:23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주류 언론이 참전용사를 가난하고 늙은 사회적약자로 묘사하는 모습에 놀랐고, 지자체별로 몇 만 원 차이가 있는 참전 수당으로 갈라치기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동료를 잃고 끔찍한 상흔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몇몇 참전용사는 기자에게 “나라가 평생 나를 천(賤)하게 여겼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최빈곤국으로 시작한 대한민국에서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이른바 ‘고기 방패’ 하나로 뛰어들어 각각 치르며 가난한 나라의 참전 군인이라는 인식 속에 평생 갇혀 산 노병들이었다.

당장 떠오르는 전쟁 영웅으로는 조선시대에 왜군 침략으로 벌어진 임진왜란을 막아 낸 이순신 장군과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를 확산해 대국민 단결을 위해 만들어진 ‘이순신’ 장군 신화와 반공 홍보에 사용된 백선엽 장군을 통해 전쟁 영웅을 떠올린다는 게 기자가 만난 시민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었다.

군인 모두가 전쟁 영웅임에도 특정 영웅만을 송곳처럼 부각시키는 전쟁에 대한 시각과 사관이 주류가 되며 나머지 영웅들이 잊히게 된 꼴이다. 전쟁이라는 투쟁은 특정할 수 없는 시공간에도 남아 있는 개념이라 두려워할 필요도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 본질이다. 그럼에도 사학계는 군인과 전쟁을 시대별 민족주의와 계파에 맞게끔 영웅시함으로써 그를 중심으로 왜곡 및 변환해 ‘드라마’처럼 각색해 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참전용사와 호국영령의 결기가 억울하게 잊혀졌다.

전쟁 문화를 일상화시킨 영국의 군사문화에 반해 대한민국 최초의 전쟁·군사 전문서점 ‘워랩’의 문을 연 천종웅 대표는 한국에는 전쟁을 기억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고 꼬집었다. 천 대표는 “전쟁은 장군뿐만 아니라 수많은 참전 군인들이 그려 내는 불확실성들이 뭉뚱그려진 일련의 동시대적이며 복합적 사건인데 우리는 전쟁 영웅 외의 전사자와 군인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십 권의 외국 군사 서적을 번역한 이동훈 작가는 “한국군의 최상층부는 두 번의 쿠데타를 통해 장기 집권했음에도 자신들을 따라 사지로 뛰어든 말단 장병에게는 인색했고 그 결과 우리는 참전용사를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로만 기억하게 된 것”이라고 군 지도부에 일부 책임을 돌렸다.

이 같은 목소리에 현장에서는 최근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우주·사이버 등 다(多)영역 통합으로 미래전을 대비해 첨단과학 강군을 육성하자는 목소리와 함께 세계 4강으로 도약하는 K방산의 꿈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 뜬 구름 잡는 것으로 그려졌고 실제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은 정부의 월 39만 원 수당에 지자체별 명예수당을 두고 ‘차별 운운’의 대상으로 전락한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수당과 처우’ 이야기만 하며 군을 떠나는 전역 장교들의 한탄도 귓가에 울렸다. 무엇이 전쟁과 국방의 본질인가에 대한 물음이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군사(軍史)를 연구하는 후세대가 줄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정전 국가임에도 주류 담론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6·25전쟁에 대한 ‘진짜 연구 인프라’가 처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별 예산을 받아 참전기념관을 짓는 데만 골몰했지 제대로 된 고증을 통해 전쟁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전국 곳곳의 전적지에 수십수백억 원대의 혈세를 넣어 전쟁기념관이 지어졌으나 천편일률적 내용에 이를 뒷받침하는 가벼운 사진과 영상만 전시되어 있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콘텐츠가 없어 결국 지역 주민 행사 동원 장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5년 동안 자전거로 전국 참전비를 답사했으며 휴가철마다 외국의 참전 공원 등을 방문해 온 장성구 전문의는 도시 개발로 참전비 접근도 어려운 곳이 많아졌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는 원래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도 잘 볼 수 있는 곳에 세웠는데 이제는 방음막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고, 터키군 참전비는 터키군이 격렬하게 중공군과 싸웠던 용인에 있는데 고속도로 나들목에 에워싸여 있어서 도보·자전거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6·25전쟁 기념물을 방치하는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대규모 국제 분쟁이었으며, 우리는 그 결과 ‘분단’과 ‘정전’ 상황에서 가중되는 북한의 군사 도발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미국 등 외국에서 연구한 6·25전쟁 관련 연구가 오히려 뛰어나다는 우스갯말이 나온다. 총과 전차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유엔군이 참전하기 전 3개월 동안 우리 군이 북한군을 어떻게 막아 냈는지에 대해 우리 사학계보다 외국 사학계에서 더 심도있게 연구했다는 게 탄생과 함께 전쟁을 치른 국가에 사는 우리의 비극이다. 잊혀진 전쟁과 패잔병의 나라를 우리가 자초하고 있는지 모른다.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