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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란 무엇인가?
‘이게 나라냐’ 라는 물음의 의미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4-27 17:40:48
▲ 문화평론가 고태경
이게 나라냐?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이 물음에 공감했다. 참사 3년 후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라는 선거 카피를 들고 나오며 압도적으로 당선된다. 세월호 참사는 5년 전에 있었지만, 그 여파, 그것이 낳은 사회적 반향은 여전히 강력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의 의미
 
세월호 이후란 무엇인가? 지금의 시대는 정확히 포스트-세월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내 삶이 안전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사회의 도처에 깔리게 되었고, 거리에서 피살된 여성, 기계에 짓눌린 비정규직노동자의 몸은 세월호라는 세 글자가 우리 삶에 각인되는 또 다른 형태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의 의미부터 헤아려 보자. 사회학자 김홍중은 이 물음에서 나라라는 단어에 주목한 바 있다. 왜 사람들은 이게 국가냐라고 하지 않고, ‘국가의 자리에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우연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우연의 일로 넘어갈 사항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는 제도적 장치의 이름이다. 현대의 국가형태를 보통 국민국가(nation-state)라고 부른다. 앞의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를, 뒤의 국가는 그 주체들이 구성한 제도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나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말로 나라는 국민과 국가가 겹쳐지는 어느 중간쯤의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나라의 번역어 중 하나로 사용되곤 하는 것이 영어 country. 국민과 같은 주체의 명칭은 아니되, 국가라는 객체적 제도 또한 넘어서는 공동체적 정서 기반의 어떤 공간을 우리는 나라라고 부른다.
 
실제로 나라냐라는 물음은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함의를 수반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제도로서 국가가 제 기능을 못했음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300여 명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것,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만 남긴 채 죽음을 그대로 관망했던 국가의 제도적 무능이 절망적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주목되는 것은 제도적 무능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여운의 감정이 이 참사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다. 세월호라는 배는 이미 십수 년이 된 낡은 배를 개조한 것이었고, 운항 당일 수화물은 과도하게 실렸으며, 승무원들은 대부분 계약직 노동자들로 안전업무를 위한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일상에서도 숱하게 접하는(혹은 우리가 이미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이 부조리들은 적어도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일상을 지배해온 삶의 방식들이기도 했다. 비용감축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효율이라는 명분하에 사회적 안전망을 걷어차고, 다수의 공적 영역들을 민간의 시장영역으로 외주화한 것은 비단 세월호 참사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이후란 무엇인가
 
따라서 이게 나라냐라는 말의 함의는 보다 넓고 일반적인 것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된 사회적 안전망의 파괴, 공적 영역의 시장화, 노동유연화의 총체적 문제들이 응축되어 폭발된 것이다. 그 문제들은 일부 정권의 무능만으로 환원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기반 자체에 뿌리내려 이제 습성처럼 굳어진 관행 및 감성과 연관된 것이며, 따라서 제도의 무능을 넘어 사회공동체 전반이 그 내부로부터 직면한 한계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순히 한 명의 비선실세가 비상식적인 사고로 사회를 통치하며 3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월호 이후를 사고한다는 것은 적어도 90년대 이후 지속된 삶의 구조조정 과정 일체를 재고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저임금인상 논란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해결의 관점에서 접근되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자영업자와 최저임금 노동자 간의 약자대결로 프레임화되었다. 미투 운동을 비롯한 여성들의 저항은 성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자 하지만, 이른바 역차별프레임의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의료영리화는 향후 국민의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고, 디지털 플랫폼체제하에 공격적으로 들어서는 공유경제는 기존 산업생태계를 파괴할 우려를 안고 있다.
 
세월호 이후의 시대를 뜻하는 나라다운 나라라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과 인권이 회복된 세계를 의미할 것이다. 노동의 지속성이 보장되는 세계, 성차별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는 세계, 장애인들의 생존권이 보장되고, 국민의 생명권이 공적 책임 하에 지탱되는 세계가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세월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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