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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도둑은 아마 장발장일 것이다.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쳐 도둑이 되었지만 자신을 용서하고 감싸 준 사제에 대한 감사로 평생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빅토르 위고의 주인공 장발장. 생계형 절도에 대해선 지금도 종종 관용적 처벌이 내려지곤 한다.
도둑질, 하면 예전에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던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빌린 책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속설도 떠오른다. 그러나 그건 도둑질 용인이 아니라 가난한 시절 지적 욕구에 대한 사회적 관용에 방점이 놓인 말들이다.
모든 도둑질이 다 이해되고 용서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도덕 불감증, 모럴 헤저드의 사례 중에서도 최악은 제자 논문 도둑질하는 교수가 아닐까. 교수가 표절을 했다는 말은 한두 번 들어 본 게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부끄러운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선배나 동료 교수의 논문도 아니고, 제자의 것을 표절하고 도둑질했다면 심각성은 더해진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정신적 소양을 키우는 과정이고, 그중에서 대학 교육은 고등교육 과정이라고 각별한 예우를 해 준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그리고 교수까지 상아탑이라는 표현으로 존중되고 보호된다. 가장 성스럽고 명예로운 배움의 경지이자 전당이기 때문일 게다.
서구 국가들에선 학문과 배움을 진로로 택한 사람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무료교육과 장학금 제도로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학문과 명예를 위해 세속적 부귀영화를 포기하는 것이라 해서 성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서구의 학문이 일찍부터 대학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다.
학자들은 학문에서 모든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에 다른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학자들에겐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매체를 통해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 그에게선 전혀 학자적 풍모를 느낄 수 없었다. 인상의 오류이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고 적중했다. 그것도 가장 비열한, 제자 논문 표절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국민 세금과 시민 세금을 제멋대로 농단한 자들에게 제자 논문 도둑질 쯤이야 가볍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논문을 쓰기 위해 땀을 흘리고 밤을 지새워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지난한 고독과 고통의 시간인 것을. 물론 학문의 삼매경에 빠져 오로지 희열을 느끼는 극강 초인 부류도 있겠지만, 보통 학생들과 교수들은 논문 쓰는 일이 산고에 비유될 정도로 힘든 과정이라는 데 공감한다. 그런 지식 재산권을 도둑질한 것이다. 땀과 눈물을 훔친 행위다.
내가 만일 그였다면, 부끄러워 세상을 버리고 숨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들고 인사청문회에 나섰다. 교육자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뻔뻔한 그에게서 구토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건 갑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갑질이기도 하다. 또 위계에 의한 괴롭힘이기도 하다.
교수, 특히 논문 지도교수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동원해 최선의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으라고 제자를 독려하고 이끄는 직책이다. 개인적으로 석사 논문을 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도교수님이 논문 지도 플랜을 짜서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과 자료, 논문과 기사 제목을 알려 주고, 만나서 인터뷰해야 할 대상이 길게 나열된 목록을 구술해 준 기억이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게 지도교수 아닌가.
제자가 쓴 논문을 자기 논문에다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해서 쓴다면 그는 교수도, 지도교수도 아니고 도둑일 뿐이다. 학문 사기다. 그런 자가 교육부의 수장직을 맡겠다고 청문회장에 버젓이 나타났다고 한다. 기함할 일이다. 하도 어이없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 사회라서 그런지 ‘어떻게 그런 일이…’가 아니라 ‘또 그런 일이 벌어지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그가 설 곳은 인사청문회장이 아니라 법정인 것 같다.
최근 거짓말과 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전에 없이 만연·팽배해졌다는 말이 들린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나는 바담 풍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는 옛말이 시대의 예언으로 부상하는 게 슬픈 오늘이다. 이번 일은 교육계의 현실이라 더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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