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애국주의 시대 기업의 운명… 국민생수가 졸지에 ‘친일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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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병마개가 일장기 연상시켜… 포장지 디자인도 일본풍 투성이”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12 14:40:24

▲ 중국에서 가장 친근한 생수, 빨강색 병뚜껑의 농푸산취안이 친일기업으로 몰려 불매운동에 직면했다. 그룹 휘하 각종 제품 포장지에 일본풍 디자인을 썼다는 이유다. 주가도 추락했다.

“공산당 없으면 중국도 없네”… 중국공산당이 독점한 역사 해석

중국의 공산화가 사실상 반(反)외세 민족주의의 결론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은 ‘민족’ ‘애국’을 강조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열강들도 강조한 논리였기 때문이다. 1972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때도 중국은 충분한 명분이 있었음에도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민족·계급 해방을 동시에 이뤘다고 자부하던 시절이었고 마오쩌둥의 개인적 호기(豪氣)였다는 평가도 있다.

대체로 30대 이하 중국인들은 고도성장기의 수혜를 누리며 자란 세대다. 1980~90년대 태어나 미국과 겨루는 존재로 부상한 중국을 경험한 것이다. 이들의 애국주의가 특히 막강하다. 문화혁명의 폐해를 모르는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공산당의 시행착오를 기억하는 노년층에 비해 거침 없이 자국 중심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표출한다.

오늘날 중국의 두드러진 애국주의 성향은 양극화 등 내부 모순이 심해지는 산업화 발전 단계 특유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역사해석을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국주의 열강에 핍박받으며 치욕을 견딘 중국이 세상에 우뚝 섰다는 식의 서사를 기본적으로 모든 중국인이 공유한다. 국민 가요 “공산당 없으면 신중국도 없네” 노랫말 그대로다. ‘어버이 수령’에 비견될 ‘어버이 공산당’ 인식인 것이다.

중국과 정치·경제·외교적 마찰을 빚는 나라 기업들이 주로 대상이 되지만 이번 농푸취안 사태처럼 다양한 요소가 작동한다. 이럴 때 당국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극복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대형유통업체 까르푸와 미국의 월마트 등 대형기업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미·중 대결구도 속에 사드문제 등 불편해진 한중관계 여파가 고스란히 현지 한국 기업에 미쳤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20~2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6차 회의에서 애국주의 교육법을 채택하는 등 학교·공직사회·기업 등 사회 전반에 애국교육이 강화 일로다. 중국 정부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5.5% 안팎 성장 목표치를 내놓고 민간기업의 활동 여건 개선이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애국주의 성향 네티즌들의 행태에 SCMP는 우려를 표했다.

저장성 원저우의 중소기업대표 협회장인 저우더원은 SCMP에 “중국 내 애국주의가 민간기업들에는 장애물”이라면서 “애국주의 이름으로 기업을 공격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상하이재경대 우팡 교수는 “애국주의 팽배의 시대엔 국적이나 개인의 신념 등이 과장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여론의 조명을 피하는 게 상책임을 조언하기도 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