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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회한의 세모
필진페이지 + 입력 2025-12-02 00:02:40
▲ 황종택 주필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세모(歲暮)다. 아쉬움이 가슴을 쓰리게 한다. 불법적인 12.3 비상계엄과 탄핵, 이재명정부 출범, 계속 이어지는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전쟁 같은 여야 간 정쟁! 혼돈의 연속이다. 설상가상 짙어지는 불황의 그늘에 서민 삶이 고단한 을씨년스러운 연말이다.
 
이 와중에 생각한다. 한 해를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정치든 사회든 상대를 배려하는 정신이 요청된다. 그래야 보다 나은 내일일 것이다. ‘채근담’은 “이익이 되는 일에는 남보다 앞서지 말고 덕을 닦는 일에는 남보다 뒤떨어지지 말라. 남에게서 뭔가를 받는 것은 분수를 넘지 않도록 하고 수양하는 일은 분수 이하로 줄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은 공동체 정신이 있어야만 세모는 종말을 뜻하는 만가(輓歌)가 아닌, 새 태양을 맞이하는 교향악과도 같은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마무리를 처음처럼 신중하게 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愼終如始則無敗事)”는 말은 유시지중(有始之重)과 유종지미(有終之美), 곧 시작의 중요성 못잖게 마무리를 잘하라는 가르침이다.
 
만물은 바뀌고 세월은 흐르며 세태가 변화하는 것은 우주 법칙이다. 부질없는 세월이다. 좀 가진 게 있다고 우쭐거리지 말고 매듭을 잘 지어야겠다. 당나라 초기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騰王閣)’을 감상해 보자.
 
“패옥 소리와 말방울 소리에 가무는 사라졌도다/ … 한가로이 떠가는 구름과 연못의 짙은 물빛은 언제나 유유한데/ 사물은 바뀌고 세월은 흘러가는데 별자리 움직이듯 몇 해가 지났던가/ 누각에 계시던 황태자는 지금 어디 계시는지/ 난간 밖엔 장강만 부질없이 흐른다.”
 
등왕각은 당 고조의 아들 등왕(騰王) 이원영이 지은 누각이다. 그 옛날 등왕의 생전에 들리던 패옥 소리와 방울 소리가 이미 사라진 데서 시인은 인생무상을 느낀다. 높게 솟아 있는 등왕각의 모습이 오히려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어서 위용보다는 쓸쓸함만 휘몰아친다.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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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천지는 쉼 없이 움직인다. ‘논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변함없이 운행하고, 만물은 여전히 낳고 자라니,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말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기에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끝이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황혼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기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 한다”는 존 키이츠의 말처럼, 우리는 내면으로 젖어드는 숭고한 아픔과 회한으로 얼룩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나이 먹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거울 보고 늙음이 기뻐서(覽鏡喜老)’라는 시에서 그는 “늙지 않았다면 요절했을 것이고/ 요절하지 않았다면 노쇠해 마땅한 법/ 노쇠는 요절보다 나은 것/ 그 이치 의심할 나위 없네.”라고 말했던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근래 크고 작은 송년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묵은해를 정리하는 자리다. 하지만, 사실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음을 확인하려고 몸부림치는 자리라고 하겠다. 늘 쫓기듯 살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허전하다.
 
첨단 문명의 이기(利器)를 마음껏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군중 속의 고독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여느 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문명의 혜택이 크고 다양하지만 가슴 속엔 언제나 허전한 강물이 흐르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사람들의 뒷모습에 드리워진 그늘은 길고 짙다.
 
물론 우주의 긴 시간에 비춰 볼 때 일 년은 찰나에 불과하고, 세상은 예전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무엇인가 이웃을 위해 베풀고 남겨야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눔 실천이다. 베풂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따뜻함이 배어 있는 작은 손길에서 소외된 이웃들은 내일을 꿈꾸게 된다. 지구별에 사는 모두는 다 귀한 존재이기에 하는 말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되새겨보는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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