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및 안보 협상의 ‘공동 설명 자료(조인트 팩트 시트)’는 큰 틀에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고, 상선뿐 아니라 미 해군 군함 건조도 미국과 함께 하게 됐다. 또 우라늄 농축뿐 아니라 핵연료 재처리도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아낸 것이다.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확장억제 강화 등도 큰 결실이다.
반면, 향후 구체적 협상 과정에서 과제가 적지 않다. 이른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은 ‘국내 건조’를 강조하는 대통령실 설명과 달리 팩트 시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향후 한·미 논의 과정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상당할 것이다. 핵연료 농축률이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원자로 설계·제작·검증과 선체 조립 등의 기술적 사안들이 큰 영향을 받는 만큼 후속 협의 결과에 따라 원자력추진 잠수함의 세부 성능이 결정될 전망이다.
추진 과정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의도 해야 한다. IAEA는 미국과 영국에 대해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자발적 안전조치 협정에 따라 비핵무장국으로의 핵물질 이전을 IAEA에 알려야 하고 지정된 장비 수출에 대해서도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호주에 대해선 “IAEA와 전면안전조치(CSA)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국가로서 핵물질에 관한 안전 조치를 적용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SA는 핵 비무장국이 핵물질을 무기로 전용하지 않도록 하는 IAEA의 감시 체계다. 한국도 가입되어 있다. IAEA와의 협상이 장기화하면 일정 지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현재 규모 주둔에 대한 언급도 없다. 팩트 시트에는 ‘미국은 지속적인 주한미군 주둔을 통한 대한방위공약을 강조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을 포함해,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라는 언급이 포함됐다. 이는 미군 수뇌부가 최근 군대의 전투력을 규모가 아닌 역량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맞물려 주목된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지만, 규모·성격·무장 등은 변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볍게 볼 수 없는 건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다. 이번 합의에는 ‘미국산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규제 승인 절차 간소화’와 ‘미국산 원예작물 전담 데스크 설치’가 명시돼 있다. 이는 우리 농산물을 보호해온 비관세장벽을 무너뜨리는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용 검역 데스크 설치는 사과·체리·포도 등 미국산 과일의 대규모 수입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정부는 품목별 개방 가능성, 농가 피해 규모, 시장 개방 일정 등을 공개하길 바란다.
팩트 시트의 핵심인 반도체 문제도 당장의 충격은 피했지만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지적이다. 팩트 시트는 한국에 ‘불리하지 않은 조건(no less favorable)’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그 뒤에 ‘미국이 판단하기에(as determined by the United States)’라는 문구가 붙어 있기에 이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불리하지 않은 조건’인지 판단 기준을 미국이 임의로 정할 수 있다는 뜻이며 실제로는 미국과 대만 간 협상 결과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운명을 좌우할 가능성도 있어 자칫 우리 수출 1위 산업의 안정성이 걱정되는 대목이다.
향후 매년 최대 200억 달러의 현금 조달 방식도 컨센서스가 요청된다. 그렇다면 특별법을 마련하기 전 정부는 야당 의견까지 고루 수렴해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구체적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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