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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관세협상이 막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비롯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잇따라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면서, 31일~11월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전 타결을 위한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다.
김 실장은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관 장관이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회담 일정을 잡았다”며 “한자리에서 입장을 조율하고 협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동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도 재무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 등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협상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협상에는 구 부총리가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여 본부장이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각각 별도 협상을 진행한다. 김 실장은 “이전과 달리 미국도 한국처럼 관계 부처 간 협업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며 “양국 모두 한팀처럼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 방식과 외환시장 안전장치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직접 현금 투자 비중을 낮추고, 상당 부분을 보증 및 대출 형태로 조성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일본식 ‘투자 백지수표(up front)’ 방식을 선호해왔다.
김 장관은 구체적 협상안에 대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긴 어렵다”면서도 “외환시장 관련 여러 부분에서 미국 측과 상당 부분 오해나 이해의 간극이 좁혀졌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 역시 워싱턴DC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양국이 빠른 속도로 조율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미국이 우리 외환시장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우리가 제안한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베센트 장관도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이견이 해소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향후 10일 내로 무언가를 예상한다”고 밝혀, 협상 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관세 협상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다시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6500억 달러에 합의했다”고 덧붙였으나, 일본의 실제 투자 규모는 5500억 달러로 알려져 수치 착오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외국 정상이 한 발언에 토를 다는 건 적절치 않다”며 “다양한 내용이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관세정책의 성과를 부각하려는 정치적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일 모두 ‘서명했다’는 발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최종 서명 전 단계로, 투자금 집행 방식 등 세부 조율이 이어지고 있다.
양국은 오는 APEC 정상회의를 협상 타결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김 실장은 “APEC은 두 정상이 만나는 기회이기에 협상단 간에 이를 활용하자는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시기를 예단해 협상하지 않겠다”며 “국익과 국민 이해에 맞게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센트 장관 역시 CNBC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현재 세부사항들을 조율 중”이라고 했다.
협상 주요 의제는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 인하(25%→15%) 확정 △3500억 달러 투자금 구성 △한·미 통화스와프 또는 유사한 외환시장 안전장치 마련 △투자처 선정 권한 및 수익배분 구조 등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협상을 실용 외교의 시험대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익 우선·협력적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산업·기재·외교 라인을 총동원한 ‘원팀 통상전략’을 가동했다. 김 실장은 “지금이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로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이는 시기”라며 “여러 갈래 논의를 한자리에 모아 속도를 내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협상이 ‘한·미 통상 동맹 재정립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PEC 회의 전 타결에 성공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외교 행보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반면 교착이 길어질 경우, 3500억 달러 투자금 조달 논란이 외환시장 불안 요인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실장은 출국길 마지막 발언에서 “APEC까지 남은 기간이 많지 않지만, 한·미 협상이 양국 모두의 경제 안정과 신뢰 회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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