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장 이상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8시간이 지나 버리는 일이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분명 밤 12시였는데 눈을 뜨니 오전 8시다.
그 사이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눈을 감았다가 뜬 것밖에 없다. 그 긴 시간을 조금도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분명히 내게 주어진 것이고 내게 머물러 있었는데 왜 나는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그리스 신화에서 잠은 ‘작은 죽음’으로 등장한다. ‘잠의 신’은 힙노스(Hypnos)인데 그의 쌍둥이 형이 타나토스 ‘죽음의 신’이다. 죽음과 잠을 형제 맺어 준 이들은 둘의 비슷한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인간은 잘 때 죽은 듯이 잔다.
잠자는 동안 인간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숨도 쉬고 심장도 뛰지만 뇌는 휴식 상태에 들어가니 시간을 인식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상태가 또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차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상대를 내 눈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기능이 있다.
특히 페이스북에서는 내가 그를 차단하면 그도 나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그 세계를 버젓이 활보하고 있을지라도 교류가 차단되면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없는 존재가 된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말하자면 쌍방 실종 상태다. 물리적 생사와 상관없이 그 세계에서는 관계가 죽으면 존재도 죽는다.
비슷한 예로 ‘탈퇴’가 있다. 카카오톡의 ‘오픈채팅’은 아무라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방이다. 기존 네이버 카페가 요구하던 가입과 등업 절차 없이 바로 들어가서 대화에 참여하면 된다.
오픈채팅방에서는 보통 가명을 쓴다. 프로필 사진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라이언·어피치·프로도·무지 같은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를 사용한다. 상대방의 진짜 얼굴도, 진짜 이름도 모른 채 만화 캐릭터로 활동하다가 ‘나가기’ 버튼 하나로 방을 나가 버리면 그는 그 세계에서 사라진 사람, 죽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지는 있다. 다른 이름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오픈채팅이 아닌가. 차단이 죽음이라면 탈퇴는 잠에 가깝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격이 주어진다. 말하고 욕하고 떠들다가 싫증 나면 죽이거나 죽는다. 방장(채팅방 운영자)에겐 ‘내보내기(죽이기)’ 권한이 있으며 참여자끼리는 서로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
그들은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다. 그 죽음은 부활이 가능하기에 더할 수 없이 가볍다. 1g의 무게조차 없는 죽음이, 살인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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