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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수유리 연설을 듣고 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람이 박철규만은 아니었으니까. 박철규는 시위 때마다 맨앞으로 달려갔다. 다윗의 후손처럼 돌팔매질이 예술이었다. 그는 목표를 향해 정확히 돌을 던졌다. 돌에 맞아 다친 전경이 있다면 그 돌은 대부분 박철규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결기는 ‘잡혀도 좋아, 죽으면 더욱 좋아’였다. 달리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도 잡힌 적은 없었다.
승연이 은영과 아름식당에 들렀을 때 윤희숙이 김태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봤던 김태주와 지금의 이미지는 사뭇 달랐다. 매끄러운 구릿빛 피부에 이목구비가 반듯했고, 이발했는지 머리가 깔끔했다. 승연 일행과 눈이 마주친 윤희숙이 자기가 앉은 식탁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반갑다. 너희 뭐 먹을래? 여기서 제일 비싼 거 시켜, 내가 쏠게.”
아름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닭개장과 수제비였고 제일 비싼 메뉴로는 닭볶음탕이 있었다. 수제비를 같이 먹자던 은영은 닭개장을 주문했고, 닭개장을 먹으려던 승연은 수제비를 주문했다. 아름식당 주인아저씨가 수제비를 주문한 승연을 향해 음흉한 눈빛을 날렸다.
“쫄깃쫄깃한 우리 집 수제비 맛들었구마. 암튼 승연 학생은 우리 집에서 다른 거 먹는 걸 보덜 못 했다니께. 울 집 수제비는 숫처녀 거시기보다 더 쫄깃하당께로.”
은영은 투덜거렸다.
“아이고, 저 아저씨는 도대체 음식 갖고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네.”
윤희숙과 김태주는 반응이 없었다. 뻔한 레퍼토리니까. 아저씨의 음흉한 눈빛과 속된 표현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지루한 메인 공연에 막간을 이용한 난쟁이의 어릿광대짓이랄까. 들을 땐 웃지만 지나고 나면 까맣게 잊게 되는 만담이었다. 가끔 아저씨를 성희롱으로 고소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떠돌기도 했지만, 아저씨가 성희롱 상대를 특정한 적이 없는데 누가, 어떻게 고소한다는 얘긴지 기막혔다. 승연은 아저씨의 민망한 비유보다 자기 식당에 출입하는 학생들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기억력이 더 신기했다. 충청도 출신이라면서 팔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윤희숙도 박철규와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다.
“승연이 멋지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나는 네 말에 동의해. 타인의 선택과 의사를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 기본이지.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불의에 저항할 사람은 저항하고. 다만 저항할 땐 함께 힘을 모으자는 것뿐이야. 박철규의 열의는 존중하지만 가끔 열의가 지나쳐서 과장된 행동이 나오는 게 문제라니까.”
승연은 윤희숙이 그렇게 말해 주니 어깨가 으쓱했다.
윤희숙이 합리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시위에 동참하지 않은 학우들을 비난하지 않고 그들의 선택과 의사를 존중한다는 윤희숙의 태도가 멋있게 보였다.
“불한당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교수님께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렇게 요구하면 안 되지요. 무례하게.”
의기양양한 승연은 내친김에 그때 박철규에게 하지 못했던 말까지 덧붙였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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