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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는 지금 나라가 좌·우로 갈려 대립하는 가운데 사상적으로 양분된 혼돈의 시기를 살고 있다. 대한민국 내 사상의 지도를 펼쳐 우익과 좌익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에 소모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대신 ‘대세(大勢·대한민국 세력)’와 ‘반대세(反大勢·반대한민국 세력)’의 개념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의 스펙트럼을 분석한다. 나아가 이로써 우리 앞에 놓인 나침반이 가리켜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지율 추락의 마침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결정적으로 추락한 것은 3월 4째 주였다. 총선 14일 전인 3월27일에 있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정원 관련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발언 요지는 “2000명이란 것은 정부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결정한 것이므로 유지하지만, 의료계에서 별도 방안을 제시하면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박민수 2차관은 브리핑에서 “2000명 증원이라는 확고한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니 ‘2000명 고수가 대통령의 입장’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좌파는 ‘윤 대통령 불통’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이로써 국민의힘 지지율은 또다시 하락했다.
KBS는 윤 대통령의 의대 정원 기자회견 이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내일 투표한다면 어느 정당 후보를 찍을 것인가?”는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40%·국민의힘 33%로 나타났다. 참패가 분명해 보였다.
직업적 이익 건드리면 봉합 어려워
필자는 대통령이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들고나왔을 때부터 상당히 우려했다. 과거 1990년대 의약분업 때 약사들이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을 보았고, 직업적 이익과 관련된 갈등은 쉽사리 봉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이해하면서도 2016년 탄핵 전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다. 박 대통령은 정권 말기임에도 연금 고갈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공무원연금개혁을 추진했다. 그러자 대다수 공무원이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고, 결국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미래의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지금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가.
실제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운명을 좌지우지할 총선을 앞두고 할 일인가 싶었다. 공포하더라도 얼마든지 총선 전에 융통성 있는 발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민감한 시기에 대통령에게 2000명 증원을 제안하고 고수하도록 한 실무자가 누군지 참으로 궁금하고 의심스럽다.
패배의 결정적 요인
우파가 항상 빠지는 오류의 함정이 있다. 사상을 고려하지 않고 사태를 분석하는 습관이다. 반대로 좌파는 모든 현상을 사상이라는 안경을 통해 인식하고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민노총이든 전교조든, 진보당이든 민주당이든, 선거 때이든 평시든, 책을 쓰든 말을 하든, 정치·경제 등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모두 사상적 용어·언어로 표현하고 사상적 전략 전술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일사분란한 전투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좌파의 전략은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 좌파가 사용하는 디테일한 용어·논리·전략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좌파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면 백전백패다.
선거는 유권자를 우군으로 만드는 게임
4.10 총선 후 왜 우파가 대패했는가를 두고 “중도를 못 잡아서 그렇다” “부정선거 때문이다” 등 다양한 분석들이 있다. 각기 나름 일리가 있지만 그런 일부의 요소들에 집착하면 큰 틀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는 어느 당이 유권자를 더 많이 우군으로 만드느냐로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다. 좌파 정당들은 이를 위해 다양한 전략 전술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연습을 해 왔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필독하는 책이 있다. 조지 레이코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2004년 발간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2006년 번역)이다. 대중의 심리를 잘 간파해서 만든 좌파 성향 정치 전략 서적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인지 현상을 정치선전을 위한 프레임에 활용하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론
이 이론의 핵심은 특정 정치 프레임을 만들어 대중의 머릿속에 먼저 집어넣는 쪽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대중은 먼저 들어온 프레임에 따라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상대편이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대응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에 더 꽁꽁 묶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프레임 공격에 대해 대응할 자신이 없으면 회피하는 것이 상책이며, 상대에게 불리한 역(逆)프레임으로 공세를 취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우파는 프레임전의 성질을 모르고 좌파의 공세에 계속 변명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대중에게 그 프레임을 각인시키는 역효과가 있다. 우파는 좌파가 먼저 던진 프레임에 말려들어 허우적거리고 벗어나지 못해 결국 큰 피해를 당한다는 것이다.
채 상병·대파·명품백으로 프레임 완성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등 좌파 진영이 승리한 것은 프레임전 덕분이었다. 우파가 패배한 것은 프레임전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총선 때 좌파 진영이 만든 프레임은 ‘정권 심판론’인데, 심판의 프레임은 △채 상병(이종섭) △대파론(윤석열) △명품백(김건희) 등이다. 좌파 정당·좌파 언론 등이 이를 이슈화하여 국민들의 머리를 선점했다.
이에 국민의힘·대통령실 등은 벗어나려고 해명을 했고, 우파 유튜버들은 이 해명 논리를 대중 속으로 널리 널리 전파했다. 이렇게 우파가 해명 논리를 전파하면 할수록 대중에게 ‘윤석열 심판론’의 프레임이 각인되는 역효과를 낳았다.
선거 기간 내내 우파들조차 모였다 하면 좌파가 던진 이종섭 사건·김건희 사건 등 윤 대통령 비판을 대화의 소재로 삼았다. 참으로 한심하고 아둔한 무리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듯 좌파가 어떤 음모의 프레임을 던지기만 해도 우파는 기다렸다는 듯 걸려든다. 그러고는 논쟁을 벌이며 국민의 머릿속에 그 프레임(그물)을 깊이 심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프레임의 타깃은 윤 대통령
총선 당일 투표장을 향할 때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은 대파·채상병·명품백등 ‘윤석열 심판 관련 영상’이었다. 결국 국민의힘을 찍으려던 사람들은 실망해 투표장에 가지 않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욱 신이 나서 투표장에 몰려간 것이다.
총선 직후의 여론조사들에서 국민의힘 총선 패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물음에 ‘대통령에게 있다’는 응답이 50∼60% 나왔다. 이는 선거 때 윤 대통령을 타깃으로 한 야당의 프레임 전술이 국민의 뇌를 완전히 장악해 효과를 거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듯 좌파는 프레임전의 특성을 잘 이해해 효과적으로 우파를 공략했고, 좌파 정당·언론·시민단체·유권자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에 반해 우파는 좌파의 프레임전에 혼비백산하여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공격하는 등 자중지란을 일으켜 스스로 무너지는 일을 자초한 것이다. 이제 정부·당·민간 우파세력도 프레임전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경북대 법과대 행정학과·동 대학원 졸업
△ 국가정보원 27년 근무(1990∼2016)
△ 국가정보대학원 정신교육 담당 교수 17년(2000∼2016)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 (전)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책임연구위원
△ 자유수호포럼 공동대표
△ 주민자치법반대연대 대표
△ 한국자유총연맹 정책자문위원
△ 국민의힘 중앙연수원 교수
△ 주요 저서
‘분류한국사(성민사)’ ‘한국사(박영사)’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인영사)’ ‘6·25동란과 트로이목마(인영사)’ ‘교양분류한국사(인영사)’ ‘박정희 대통령 100대 치적(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종북세력과 위기의 대한민국(대추나무)’ ‘주민자치기본법, 공산화의 길목(대추나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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