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수가 패착일 줄… 애타는 젤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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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軍시설 피격에 최소 270명 死傷 시름 더해
‘反인도 범죄’ 푸틴, 환대 속 몽골 방문…ICC 무력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04 16:43:29

▲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서방의 피로감이 짙어지는 가운데 러시아 추가 타격을 위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박2일 몽골 방문 일정을 마쳤다. 이론상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푸틴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해야 할 회원국 몽골은 푸틴을 극진히 환대했다. 몽골에선 95% 넘게 러시아산 에너지를 쓰는 등 경제 의존도가 높다.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폴타바의 군 교육시설을 공습해 최소 270명의 사상자(51명 사망·219명 부상)가 났다고 키이우인디펜던트 등 현지 매체들이 검찰과 구조당국을 인용 보도했다. 민간인 피해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군 소식통을 인용한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스칸데르-M 전술미사일 시스템에서 순항미사일 2발이 우크라이나 통신부대 훈련센터로 발사됐다.

폴타바는 러시아 벨고로드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간 국경으로부터 약 110㎞ 떨어져 있다. 이곳의 통신·전자 분야 장교 및 드론 조종사 양성 시설이 러시아에게 공습을 당한 것이다. AP통신은 이날 공습을 2022년 2월 개전 이래 가장 치명적인 수준의 하나로 꼽았다. 일반 병사들를 잃었을 때보다 실질적 타격이 클 수 있다.

우크라 측에선 경보가 울리는 동안 공습이 개시됐음을 들어 “야만적”이라고 비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인간쓰레기들(scum)이 이번 공습의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라며 서방에 미사일·방공망 지원과 러시아 본토를 향한 장거리 무기 사용 제한 해제를 거듭 요구했다.

젤렌스키는 전쟁 발발 이후 2년 6개월 넘게 지속된 소모전에서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지만 국토 5분의1 정도를 점령당한 채 돌파구를 못찾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접경지 러시아 본토를 기습·점령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근처에 대규모 드론 공습을 가하는 등 국면 전환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한 돈바스 지역에서 밀려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전쟁 발발 이래 최대 규모의 내각 개편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미국에 제시할 승전 전략을 위한 통치체계 재구성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올하 스테파니시나 유럽통합 담당 부총리, 올렉산드르 카미신 전략산업장관, 데니스 말류스카 법무장관, 루슬란 스트릴레츠 환경보호·천연자원부 장관 등이 의회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국영 전력회사 우크레네르고의 최고경영자인 볼로디미르 쿠드리츠키가 해임됐다는 소식도 외신들이 전했다. 지난달 26일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 시 드러난 발전소 방어 부실의 책임을 물어 단행된 탄핵성 경질로 해석된다.

서방의 피로감 속에 젤렌스키는 동맹과 우방에 확신을 줘야만 한다. 누구보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승리 시 지원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정부 역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체면을 구길 수 있는 위험성을 극력 피하고자 한다. 여러모로 11월 이전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긴 힘들다.

이런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몽골을 방문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회원국인 몽골이 푸틴에 대한 ICC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긴커녕 그를 극진히 환대했다. 푸틴은 3일(현지시간) 1박2일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울란바토르 공항을 통해 떠났다. 러시아 점령지 전쟁고아들 처리 문제가 ICC의 푸틴 체포영장 명분이다. 러시아와 서방은 각각 ‘보호’ ‘납치’라며 엇갈린 입장을 고수해 왔다.

ICC는 반(反)인도 범죄자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상설 기구지만 강제력이나 제재 수단이 없다. 작년 11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당시 피오르트 호프만스키 ICC 재판소장은 법률신문과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에 “현재 16명 개인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다. 푸틴도 16명 중 한 명”이라며 “국제사회의 협력이 충분치 않다”는 현실을 짚었다.

수입 석유의 95%가량이 러시아산일 만큼 경제 의존도가 높은 몽골 처지를 감안할 때 ICC영장 집행 협조란 애당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블룸버그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와 몽골 사이에 미리 ‘불체포 확약’이 오갔음을 전했다. ICC가 몽골을 협조 의무 위반 혐의로 추후 기소할 수 있다는 게 일각의 시각이지만 실질적인 제재나 처벌 수단이 없다. 사실상 ‘규탄’ 메시지를 내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ICC 회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마찬가지다.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가 2015년 자국을 방문했을 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나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124개 ICC 회원국에 정작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중국·인도 등 거대 핵심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아 한계가 뚜렷하다.

이스라엘 동맹국인 미국 정부는 5월 가자지구 전쟁 관련해 ICC 검사장이 하마스 최고지도부 3인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동시 청구하자 “터무니없다”며 공개 비판했다. 심지어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ICC 지도부에 대한 제재’를 언급해 파란이 일었다. 네타냐후 총리 등에 대해선 체포영장 발부 여부조차 결정을 못내린 상태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