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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선수가 자국 내 대회에서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앞질러 거액의 상금을 탄다. 러시아수영연맹은 지난달 말 러시아컵 결승에서 파리올림픽 동일 종목 우승자와 기록이 같거나 이보다 뛰어난 성적일 경우 200만 루블(약 32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러시아수영연맹 상금 공약의 첫 수혜자는 예브게니야 치쿠노바(19)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치쿠노바는 26일 2024러시아컵 여자 평영 100ｍ 결승에서 1분05초26을 기록했고, 사흘 뒤 파리올림픽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타티아나 스미스가 이보다 0.02초 느린 1분05초28로 우승했다. 200만 루블은 러시아 대졸자 평균 초임 연봉의 2배에 상당한다.
지난달 28일 러시안컵 여자 평영 200ｍ에서도 치쿠노바가 2분18초98로 정상에 올랐으니 파리올림픽에서 이보다 좋은 기록이 안 나오면 200만 루블을 한 번 더 받게 된다. 현지 매체 스포츠루는 “파리올림픽 여자 평영 200ｍ 출전 선수 중 치쿠노바만큼 빠른 선수가 없다”며 “올림픽 덕분에 거금을 벌었다”고 풍자하기도 했다.
치쿠노바는 열여섯 살 때인 2020년 도쿄올림픽 여자 평영 200ｍ 4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4월 러시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평영 200ｍ에서 세계신기록(2분17초55)을 세웠다. 이번 파리올림픽의 강력한 메달 후보일 뻔 했으나 스스로 불참을 선언했다. 한 인터뷰에서 “난 러시아 국가대표이지 ‘개인중립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이른바 ‘특별군사작전’을 진행 중인 러시아는 파리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국가대표 아닌 개인중립선수 출전만 허용해 러시아 국적 선수 총 15명이 파리올림픽에 참가했다. 치쿠노바의 자진 불참에 대한 러시아 내 평가는 높지만 무시 못할 게 올림픽 특유의 역사성과 위상이다.
실제 한 러시아 수영 팬이 “조만간 치쿠노바는 잊히고 스미스가 올림픽 챔피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댓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올림픽 이외에도 최고 실력자들이 모이는 유명 대회들이 있긴 하지만 올림픽의 상징성과 각인 정도를 능가하진 못한다. 올림픽이란 선수 자신이나 응원자들 모두에게 꿈의 무대인 것이다.
4년마다 개최되는 대표적인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가 올림픽이다. 스포츠를 통한 인간성 고양과 세계평화를 추구하며 여름·겨울 대회를 개최해 왔다. 올림픽의 기원은 약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지방의 제전(祭典)이다. 본래 신들을 향한 제사 의미의 체육·예술이 펼쳐지던 장이었으나 기독교 국교화로 중세가 무르익던 4세기 말 사라졌다.
이후 1500여 년 지나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재개된다. 제1회 근대올림픽에 241명의 선수가 43개 종목에서 겨뤘다. 올림픽 부활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프랑스의 교육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다. 대회의 로고 ‘오륜’ 마크 역시 그의 고안으로 전해진다. 프랑스는 18세기 말 혁명의 피바다를 거쳐 80여 년 만에 비교적 안정된 공화정(제3공화국)을 맞이한 상태였다. 산업혁명 이래 놀라운 과학·기술 진보를 거듭한 서구의 중심이기도 했다.
앞서 1894년 6월 제1회 올림픽총회가 파리 소르본대 대강당에서 열려 프랑스의 24개 스포츠 단체 및 클럽을 대표한 58인, 벨기에·스페인·미국·영국·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러시아·스웨덴 등의 스포츠연맹 대표 20인을 비롯해 2000여 명 체육인들이 올림픽 부활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당초 올림픽 참가 주체가 선수 개개인이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또 올림픽정신이란 “스포츠를 통해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국적·인종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연대감·페어플레이 정신으로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다. 인류의 숭고한 이상을 내건 올림픽이 그러나 빠르게 ‘국가 대항’ ‘국력 대결’의 무대가 돼 갔다.
정치적 기회로 활용한 최초 사례는 역대 최다 49개국이 참각한 제11회 대회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나락에 빠졌다 일어선 독일을 드러내고자 했다. 자국민들에게 과도한 자기중심적 애국주의를 주입하며 외부엔 인종주의와 군국주의 야욕을 감춘 채 긍정적 이미지로 위장하는 데 성공했다.
나치 위험성을 감지한 몇몇 나라에서 베를린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으나 미국·영국·프랑스·스웨덴·체코슬로바키아·네덜란드에서 표면화되다 말았다. 각국 유태인 선수들의 개별 불참 선언이 있었을 뿐이다. 미 아마추어운동선수조합에서 투표로 참여가 결정되자 여러 나라들이 동참했고 결국 소련만 불참했다. 몇년 후 시작된 독일과 소련 이들 우익·좌익 전체주의의 격돌은 각각 나치독일 패망과 소련 측 2600만 사상자로 결론이 났다.
한편 가장 비극적인 대회인 1972년 뮌헨올림픽을 빼놓을 수 없다. 그해 9월5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테러단체 ‘검은 9월단’ 대원 8명이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대표팀 숙소를 기습 점거해 인질극을 벌였다. 진압 과정에서 인질(선수·스탭) 9명과 테러범 전원이 숨졌고 전 세계에 생중계돼 세계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반면 1988년 서울올림픽은 기념비적 동서화합의 장이 됐다.
냉전의 최전선 대한민국에서 열린 제24회 올림피아드는 8년 만의 온전한 대회였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제재를 위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서방이 대거 보이콧, 18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선 반대 진영이 불참한 직후였다. 공산권에서 ‘미 제국주의 식민지’로 불리던 대한민국의 실상은 동구권에 심대한 충격을 안겼으며 현실 사회주의 체제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된다. 서울올림픽이 약 130년 근대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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