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실과 동떨어진 ‘친족상도례’ 너무 오래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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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71년 만에 전원 일치 헌법불합치 결정
법·현실의 괴리 커지면 선량한 시민이 피해
장애인 등 취약한 구성원 권리 옹호 의미도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03 00:02:01

헌법재판소가 최근 친족 간에 발생한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야말로 만시지탄이지만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친족상도례가 71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해당 조항이 일률적으로 처벌을 면제해 입법 재량을 명백히 일탈했다는 판단이 근거가 됐다. 한마디로 법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헌재가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그토록 현실과 동떨어진 헌법 조항을 70여 년이나 존속시켜 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헌재는 2012년에도 친족상도례 합헌 여부를 가린 적이 있었지만 당시엔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친족상도례 조항은 사기‧공갈‧절도‧횡령‧배임‧장물‧권리행사방해 등 범죄에 적용된다.

이번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사회와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그에 따른 가족 구성·인식 등의 변화가 있다. 현실의 변화 속도는 전광석화와 같은데 법은 한 걸음씩 발을 옮겨 왔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 그 피해는 선량한 시민들이 받기 마련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그 괴리를 최대한 좁히겠다는 의지로 비쳐진다. 헌재가 올해 4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까지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정 비율의 상속분을 보장하는 유류분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조항 위헌 확인 사건과 관련해 “현재 우리 사회는 가족 세대의 구성이 단순화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경제활동의 양상도 과거와는 현저히 달라졌다”면서 “이에 일정한 친족 사이에서는 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공유될 수 있다거나 손해의 전보 및 관계 회복이 용이하다고 보는 관점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가족 세대 구성과 경제활동 양상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음에도 가족 사이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공유될 수 있다는 관점을 용인하는 친족상도례 조항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가족·친족과 그저 피해를 당하고도 하소연할 데 없는 피해자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유명인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언론 지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로 알려진 박세리 전 LPGA 선수가 아버지 빚을 수차례 대신 갚아 왔다며 부친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가족 간 경제 문제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박 선수가 아버지를 고소한 혐의는 횡령 등 재산범죄가 아닌 ‘사문서 위조’이고 고소 주체도 박 선수가 아닌 그가 운영하는 재단이었다. 이는 친족 간 재산범죄를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친족상도례 규정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내려진 결정은 특히 ‘장애인 등 취약한 구성원’의 권리를 지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헌재는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한 형법 제328조 1항이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우려가 있고, 장애인 등 취약한 구성원에 대한 착취를 용인하게 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적장애인 조카의 상속재산 수억 원을 가로챈 삼촌 내외가 동거 친족이란 이유로 처벌을 피한 사례가 있었다.

친족상도례 조항 외에도 가정 문제와 관련한 법 조항이 현실과 충돌하는 경우는 또 없는지 법조계는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유교와 가부장제의 전통 속에서 가부장 권위가 강했던 시절에 만들어져 현실과 괴리된 부분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또 국회는 더 이상 뒤처진 법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입법 기능을 속히 작동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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